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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2012대학생활을마치며

Theme #3. 본과공부.

2012.03.04 02:27
 작성함


1.

 

다이나믹하고 즐거웠던 예과생활은 안녕!

3주간의 인도배낭여행을 끝으로 본과에 진입을 했다.

예과 때와 달리, 강의실 분위기를 위해 머리검사를 한다니

머리를 짧게 자르고 본과에 진입했다.

 매일 아침 8시30분부터 저녁 5시30분까지 달리는 빽빽한 수업시간이라니...

 

게다가 수업이 끝나면 바로 저렇게 두팔을 벌리고는

"얼른 와서 공부해야지~??"

  \^^ /

하고 나를 맞는 듯한 야속한 도서관 건물이 그렇게 미워보일 수가 없었다.

 해부학, 태생학, 생리학, 병리학, 면역학, 생화학, 미생물학, 신경해부학 등등등.... 끊임없이 쏟아지는 새로운 지식에 참 당황스러움과, 혼란스러움과, 외로움과, 스트레스를 느껴가며 본과생으로의 삶에 적응해 나갔다.


 

 

오전 오후 내내 강의실 혹은 해부학, 병리학, 조직학 실험실에 갇혀서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수업을 듣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저녁을 먹고, 바로 도서관에 올라가서 또 공부를 해야했다...

 

의과대학 터나 건물들이 대부분 거대한 병원건물들의 그늘 안에 있었기에, 4월이 되도 좀처럼 따스한 기운이 찾아들지 않는 추운 본과생활...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느정도 심도로 공부를 해야할지 영~ 감이 오지 않았던 거다.

그저 학교에서 가르치는대로, 시험보는 것, 족보문제들만 쫓아가기에도 버거운 본과1학년 초반이었다.

 

 

 

 

2.

 

힘들었던 본과 1학년 초반부...

 그 와중에 참 다행이었던 것은, 해부학이 진심으로 재미있었다는 사실이다. 해부학 시험을 위한 공부 자체는 따분하고, 시험지에 쓸 때 생각이 안 나는 부분들이 많아서 한 숨쉬는 순간들이 많았지만, 그림책이나 사진을 보면서,

"이게 여기에 붙어있고, 저거랑 연관되어 있는 거구나!"

하면서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공부할 수 있었기에 참 감사했다.

이게 뭐하는데 쓰는 근육인가... 싶을 때는 직접 그 근육에 힘을 줘서 더듬더듬 만져도보고, 동맥의 주행경로에 대해 공부할 때는 여기저기 숨어있는 맥박들을 짚어보기도 하고...

 

다른 것들은 맨눈으로 볼 수 없어서 머릿속으로 연상하면서 공부하려다보니 나도 모르게 잠들어 버리곤 했었는데... 해부학만큼은 내 몸 짚어가며, 이것저것 사진그림 찾아가며 공부할 수 있었기에 참 즐거웠던 것 같다.

병원실습도 하고, 의사시험 준비도 하면서 돌이켜보니...

해부학이 의학의 기초중에 기초라는 이유,

해부학에 가장 많은 학점이 배정되어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본1을 겪은 이후에 후배들이 골학 스터디를 하고있는 곳에 간식을 사들고 응원하러 갈 때면, 책에 나오는 중요한 해부학적 포인트를 자기 몸에서 한번 짚어보라고 막간 퀴즈를 내보기도 한다.

 

아무리 별표 다섯 개, 열 개 그려놓고 중요한 거라고 외워봤자,

그게 몸에 어디 달려 있는 건지도 모른다면 외우나마나 이니까...

 

조금은 덜 외워서 시험성적은 못 얻게 되더라도 이게 당최 어디에 붙어있는건지는 좀 확실하게는 짚어보자는 Practical anatomy... Just oral anatomy가 아닌 practical anatomy...

모든 강의내용과 족보를 소화할 수 없었던 내 부족한 암기력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처방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해부학 공부방법은 분명, 의사국가고시 실기(신체검사와 술기), 필기 공부를 하는데 확실히 많이 도움이 되었다.

 

 

 

 

3.

 

재시(재시험)...

재시는 언제 생각해도 참 쓰라리다.

 

형광펜과 볼펜으로 underline그어가며, 깜지 써가며 시간투자 해가며 공부를 해도, 노력과 결과가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 이 불편한 진실.... 재시명단이 발표되는 순간이면 언제나 가슴졸이며, 게시판을 클릭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본과생이 된 후, 처음으로 맞은 재시 3연타...

학년 동기들 중에 재시 3연타를 맞은 학생들은 아주 소수라는 소문과 재시 3연타 맞은 학생들 각오하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교수님들의 말이 있었다는 소문...

참 괴로웠다...

세상에 혼자가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

공부에 대해서는 늘상 잘한다 잘한다 소리만 듣고 살아왔던,

내 인생이 나에게 태클을 걸기 시작했다고 표현하면 맞을까?

 

주변에 가까이 지냈던 친구들은 대부분 열심히 하고,

그만큼 좋은 성적을 받았기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나의 공부 방법에 문제가 있는 건가... 싶었는데,

뾰족한 수가 있나... 어쨌든 더 열공해야지!

결국 초반에 남들 안걸리는 재시에 걸려서 굴욕을 당했다가

그 이후로 엄청 분발을 해서, 남들 많이 걸리는 재시를

요리조리 피해가는 짜릿함(?)을 맛보게 되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었다.

땅바닥을 긁고 있었던 나의 자존감은 그걸로 완전히 회복! ^-^v

결국 그 값진(?) 본1 초반 재시 3연타 경험은 초반 재시 때문에 고민하는 후배들을 위로하는데 되었다.

재시 경험은 그 때 당시엔 참 괴롭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그 만큼 좋은 후배들과의 공감거리일 수가 없다.

본1 이후로도 나는 종종 재시를 봐서 4년 내내 재시상담을 통해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선배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감사하지만, 조금은 씁쓸...한 이야기!

 

 

 

4.

 

중고등학교 때는, 친구들이 시험기간에 공부 안하고 딴짓하고

놀러다니는 걸 보면,

'왜 저러지? 시험이 코앞인데, 저러고 싶을까?

미리미리 공부 해놔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곁눈질 하기도 했는데...

본과에 올라와 보니 그 마음을 정확히 알겠는거라...

 

공부를 해도 그만큼의 소득이 없는 답답한 마음...

에라 모르겠다 하고 자포자기, 혹은 기분전환을 위해 유흥(?)을 즐기고픈 그 마음... 그 마음을 알겠는거라...

역시 사람은 같은 상황, 같은 마음이 되어보아야

제대로 심정을 이해할 수 있나보다...하는 깨달음(?)을

정말 찐하게, 제대로 얻었다.

 

 

 

 

 

5.

 

본3,4 병원 임상 실습은 처음엔 좀 실망스러웠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나름 만족스러웠다. 처음에 임상실습의 목적에 대해 너무 편협하게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냥 상투적으로 표현하면 PK(Poly Clinics)임상실습은 강의실에서 배운 내용을 현장에서 보고 듣고 해보는 것... 정도 이겠지만, 실습이 후반부로 갈수록 다른 목적을 나름대로 추가 했더니 만족스럽게 되더라는거다.

 

실습은 병원의 동료관계의 축소판이다.

 서로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묶여서, 서로도 잘 모르는 일들을 함께 분배하고, 일을 해가는 과정에서 독려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이다. 각과정에서 생기는 갈등을 조절하고, 스트레스 상황에서 서로 자기의 특성에 따라 한걸음씩 물러서고, 때로는 한걸음 더 나설 줄도 알고... 그리고 그것에 감사하는 법을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다.

 물론 의사가 되어서 더욱 중압감을 느끼는 극한의 상황에서는 그게 잘 될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이다.

 

실습은 대학병원 시스템의 특성, 업무전단 단계와 직능별의 상호관계(혹은 상하관계...)를 보고 느끼고, 내가 꿈꾸는 의사상을 조금씩 구체화하는 시간이다. 오로지 이과는 rule out, 저과도 rule out...이라는 공식을 통해 나의 진로를 그려가는 게 아닌... 병원 여기저기에 숨어 있는 인간냄새와 지식냄새와 기술냄새를 맡아가며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어떤 역량(or talent)를 키워서 진로선택에 활용할 것인가를 몸과 마음으로 느껴보는 시간이다.

 

실습은 실습시간 이후에 어떻게 하느냐가 조금씩 쌓여서 큰 차이를 만드는 것 같다.

 외과 수술방 스크럽이 끝난 뒤, 목부터 등허리 무릎 발까지 아프고 피곤한 상태에서 그 날에 어렵풋이나마 눈으로 본 수술에 관련된 해부학 그림이나 사진을 한번이라도 찾아보느냐 마느냐...

 내과 외래 실습이나 교수님들의 회진이 끝난 뒤, 질문에 답을 못해서 탈탈 털려서 의욕 zero인 상황에서도 그날 흘려서라도 들었던 약이름을 찾아보느냐 마느냐... 그날 봤던 검사에 대해서 찾아보느냐 마느냐... 이 차이가 실습의 질을 결정하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나도 쏟아지는 질문에 자포자기한 상태로 멍 때리기도 많이 해 봤고, 그 누구도 듣지도 보지도 못 했을 법한 헛소리도 해보고, 30분이고 한시간이고 서거나 앉아서 욕도 많이 얻어 먹어보고, 잔소리 듣다가 맘이 상해서 잠들기 전까지 씩씩거린 적도 많았지만!

 실습이 끝나고 조금이라도 더 찾아봤던 날은 집에 가는 발걸음이 무겁지만 경쾌했던 것 같다.

실습도 자기하기 나름이지만,

결국 지식이 부족한 나에게는 임상실습을 몇주 경험해 본뒤에 선택의 기로에 섰다.

실습돌 때 앞조로부터 인계가 내려오는 족보만 달달 외우고 나중에 또 까먹어버리느냐... 아니면 족보를 조금 덜 보게 되더라도 내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면서 내게 도움이 되고 남은 공부를 할 것이냐...

결국 나는 다시한번 정말 내가 궁금한 것을 찾고 공부할 수 밖에 없었다.

 

 

 

 

6.

 

2012년 1월 10일~11일.

이틀간의 의사 국가 시험을 위해 수개월을 달렸다.

 

물론 나는 평민중에 평민이라서 2독불패(二讀不敗 : 퍼시픽 KMLE라고 불리는 의사국가고시 기출문제집을 2독하면 국시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속설...정도?)가 목표였고, 2.5독 정도를 하고 시험을 봤고, 무난하게 합격할 수 있었다.

 

의사면허증이 발급되서 내 손에 쥐어지면 그것을 보면서, 오로지 좁은 도서관자리에서 똥줄타면서 기출문제집을 풀던 장면들만 생각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고독하게 재시를 맞이하며 느끼고 반성했던 시간들... 공부하면서 힘들어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보다 더 마음아파 하셨을 부모님의 마음... 어떤 길을 걸어갈지에 대해 선후배 동기들과 수없이 나누도 이야기들... 실습 때 만났던 선생님들과 환자들 혹은 동료들이 내게 준 감동들... 분명 이런 많은 과정들이 있었기에 한명의 의사가 되었음을 잊지 않고, 감사함으로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기를...

 

 

 

 

7.

 

의사의 길...

그것은 결코 혼자가는 길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 함께 가는 길이다.

 

혼자가는 사람, 함께 가는 사람 모두 외로움을 느낄 수는 있지만,

외로움을 표현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은 함께 가는 사람들이다.

멀리가려면 함께가라.

- 이미지 디자인 컨설턴트 이종선氏 저서 제목 -

 

 

앞으로도 내 옆에 누군가와,

그리고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함께 걸어갈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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