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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인문학의 부재.

  8년 여 전, 대학교 신입생 때이다.

  의예과 1,2년 동안 선택교양 수업을 십수학점을 이수했어야 했는데, 그 중에 한가지로 사회대학에서 심리학 수업을 들었더랬다.

몇 번 수업을 듣다보니 의예과 학생들 외에 다른 학생들은 대부분 문과출신 학생들로 보였고, 그들의 입장에서는 수업 때 등장하는 신경,뉴런,전두엽,측두엽,후두염,신경전달물질,호르몬 등의 용어들이 낯설었는지 교수님 수업 한마디 한마디를 고스란히 메모하기에 바빠 보였고, 또 새로운 용어가 나오면 요즘말로 '멘붕'에 빠진 표정이 역렸했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고등학교 때 이공계열에 속해 있었고, 역사/사회/정치 등에 대한 정규수업을 제대로 이수하지도 않고 하루가 바쁘게 이공계열 과목 진도 빼기와 심화 수업에 열을 올리고 수능이라는 피니쉬 라인을 향해 전력질주 했던 것과 같이, 그들(당시 문과출신 학생들)도 인문계열 과목 진도 빼고 심화수업하기에 바빴기에 그렇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지식들이 그들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어휘들로 가득 찬 외계어였던 것과 같이...


  (난 고등학교 1학년 때 받은 인문계열 과목의 교과서인 정치/사회/지리/국사/근현대사/경제/윤리 등을 단 한권도 '진도'를 마치지 못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분명히 인문계열 과목의 교과서 끝까지 수업을 듣지 못 했는데, 졸업할 때 보니 한국지리(?)와 어떤 과목을 이수한 것으로 되어 있어서 놀랬던 기억이 있다. 물론, 후에 모교는 교육청의 감사를 받고 이를 지적받았다고 들었다. 하지만, 처벌이 있었는지, 그 후로도 그런 일들이 발생했는지...는 모른다.)


  시간이 흘러 6년제 대학교에서 중고학년이 되었다. (내 딴에는) 충격적인 소식들을 들었다.

  2년간의 의예과 학생들의 커리큘럼 중에 선택교양(단과대학이나 과목 상관없이 어떤 수업이든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는 과목)과목을 2년간 십수학점에서 6학점으로 축소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의예과 학생들을 본 캠퍼스에 두지 말고 신입생 때부터 의과대학 캠퍼스에 잡아두어야 한다는 어떤 교수님의 말씀...

  결국 선택교양 수업은 실제로 대폭 축소되었고, 의예과 학생들은 제목만 들어도 한번쯤 그 안에 앉아서 교수님들의 강의를 들어보고 싶게 많드는 많은 교양강의들을 수강할 기회를 크게 잃었다. 말 그대로 선택적으로 교양과목을 수강할 기회를 크게 잃은 것이다. 대신에 그 요양학점은 의학용어 등 고학년의 시각에서는 굳이 그것을 위해서 그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까....하는 생각밖에 안 드는 과목으로 그 시간이 채워졌다. 듣기 싫어도 꼭 들어야하는 의과대학 캠퍼스에서 수강하는 교양필수 학점으로 전환 된 것이다. 그저 안타까웠다.

   꼭 그래야만 할까...

엄청난 입시 경쟁 정글에서 '살아남은' 이 핏덩이 아이들을 정말 또 다시 '병원 사회 정글'에 가두어야만 할까...

  사람이 대학교 교양수업 몇학점으로 뭔가 크게 변하는 것 아니겠지만... 말 그대로 책만으로는 취득하기 어려운 교양지식과 사회를 보는 눈을 키울 수 있는 그 '가능성'이 줄었다는 의미에서는 참 안타까웠다.


  인생은 길고, 사회는 넓다.

  한 사람이 6년제 의대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더라도 앞으로 그가 살아온 시간의 2-3배를 더 살아가야 한다.

  대학의 문턱을 밟는 순간부터 은퇴하는 순간까지 의과대학/큰병원 안에서 오로지 워크홀릭으로 살 것이 아니라면, 사회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본교육과정인 초중고등학교를 이제 막 마친 아이들에게는 그 사회를 보는 다양하고 넓은 시각을 가질 가능성이 필요하다.

  더 심도 있는 지식과 시각을 지향할 것인가는 후의 문제이고, 여튼 '맛보기'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학교를 졸업 하고, 사회로 막 나오더라도 알아야할 것이 너무 많다.

  덜 적극적으로는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이고, 적극적으로 말하면 내가 살아가는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말이 거창하게 인문학이지만 어찌보면 정치/사회/경제/지리/공감 등은 말 그대로 이시대를 살아가는 교양거리들인 것 같다.

  병원 사회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를, 우리 사람 사는 세상을 좀 더 알고 느껴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교양없는 나를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