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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2012인도

[2012.1.25] 진료 셋째날.

2012.02.23 04:10
 작성함.


#1.
   오늘의 진료 캠프는 미얀마 난민들이 모여사는 마을의 한 교회이다. 미얀마는 인도의 동쪽과 국경이 접해 있는데, 내전(?)에 의해 발생한 난민들을 인도가 받아들여줘서 델리의 북부(올드델리)에 자치지역을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치 지역만 마련해 주었고, 그 이후에 그들에 대한 주민등록이라든가, 복지라든가 등등의 난민보호는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상황이라 진료지원이 필요했던 것이다.

 허름한 2층 건물의 2층에 자리잡은 작은 교회. 어린아이들이 바글바글... 언제부터 우리를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photo by 희은.
 
   한참을 북쪽으로 달리다가(사실은 30km밖에 안되지만, 인도의 경이로울 정도의 traffic jam 덕분에 한시간도 넘게 걸린 것) 작은 길로 들어서는데, 이게 웬 일? 안 쪽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사람들의 콧대가 낮아지고 눈빛이 선해지더니, 인도사람들 보다는 우리와 외모가 비슷한 사람들이 우리를 반겨준다.

   어른 허리도 안 될만한 꼬꼬마들 한무리와 어른들이 기다리고 있는 2층의 교회에서 한바탕 시끄러운 환영인사를 받고 오늘의 일정을 시작한다.


 이들은 이방인 진료팀이 올 때면, 극진히 환영해 주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것 같다.
photo by 기영.

   현지 담임목사님의 기도가 참 감동적이었다.
"Without you, no medicine....."
그렇다. 하나님 없이는 우리의 그 어떠한 것도 아픈사람을 치유하는 도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의료사회에 첫발을 디딛는 나에게 이 감동이 오래오래 남아 있으면 좋겠다.
  늘 하나님이 주되심을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늘 감사함으로...

  아이들이 두눈을 꼬옥 감고 두손을 가슴에 모으고 기도를 한다.
   하나님은 어린아이들을 참 예뻐 하시는 것 같다.
photo by 민.
 
 
#2.
   가슴통증으로 온 중년 여성 환자. 나의 허접한 영어를 써가며 통역하는 사람을 통해 이야기를 들어보니 심혈관 문제가 의심된 환자...
처방해줄 게 없음.
   어린 나이부터 당뇨가 있어온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환자. 어렸을 때부터 손 쓰지 못해서 혈당이 높은 것 외에도 요붕증에 얼굴과 다리에도 부종이 있단다.
처방해줄 게 없음.
   아이가 최소한 둘셋 있는 듯한 엄마가 종합영양제를 얻고 싶어서 왔는데, 사람이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다 떨어져서 줄 수 있는게 없음.
   우리팀이 가지고 있는 약이라고는 철분제, 영양제, 감기약, 해열제, 항염증제, 항생제, 안티히스타민, 소화제, 구충제 정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게 없었던 환자가 너무 많아사 마음이 많이 아팠다.
   불과 2주전에 치른 의사국가고시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환자가 내 앞에 있는데, 나는 해줄 수 있는 맨손치료도 약도 아무것도 없었고, 환자에게는 I will oray for you. I am sorry... 라고 밖엔 말 할 수 없는 마음아픈 상황들...
   밤에 잠들기전에 그 사람들 얼굴이 아른거려서 기도하고 잠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어제와는 비교도 안 되는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렸는데, 영양제와 구충제를 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서 의사생활을 한다고해서 크게 다르진 않으리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이곳이나 한국이나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 하는 이유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 아닐까?
   환자의 사회경제지리적 여건의 불충족...
photo by 기영.
 

#3.
   나는 참 많이도 배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스운 성적으로 의대에 입학을 해서 우습지는 않은 성적으로 의대를 졸업하게 됐고, 의사시험에 합격은 했지만, 당장 맞딱드린 상황 앞에서,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해줄 수 있는 게 훨씬 적은... 상상도 못 했던 현장에 내가 앉아 있었던 것이다.
   눈 앞에 있는 환자에게 맨손으로 검사를 해볼 수 있는 간단한 검사도 알고 있었고, 어떻게 치료하고 어떤 tool을 이용해서 추적관찰 하는 것도 알고 있을 정도로...
   하지만 내가 배우고 머리가 빠지도록 외운 그 많은 진단 치료 및 추적관찰 알고리즘들이 이 안타까운 상황들 앞에서는 깡그리 무색하게 되어버렸다.
 
   웬만한 머리 가지고는 의과대학 생활동안에 중요한 것만 집어넣기도 어려운 이 머릿속에 앞으로 어떤 지식들을 채워 넣어야 될까...? 내가 만나게 될 환자들과는 전혀 동떨어진 최첨단을 달리는 의료기기와 시술과 약품에 대한 지식? 돈 있으면 이런 치료도 한번 시도해 볼만하다는 희망고문쯤은 해 볼 수 있을 최신지식...?
   하나님이 내게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내가 걸어야할 선택과 집중의 길은 어떤 의사상이 될 것인지 한번 되물어 본다.

 

 


#4.
   선교사님들은 외롭다.
   골목길을 따라 들어갈수록 점점 낯익어가던 사람들의 외모. 불과 지난 이틀간 인도 사람들을 대했을 뿐인데도 미얀마인들을 만난 게 어찌도 이리 반가웠을까... 비슷한 눈매 비슷한 콧대만 보아도 이렇게 편안해 졌는데... 오랜만에 현지에서 한무더기 고국의 사람들을 만난 선교사님들의 마음은 얼마나 반갑고 좋을까 싶었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달려오셔서 우리를 맞아주시고, 이틀뒤에 프로젝터까지 가져오셔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신 송선생님의 외롭고 반가운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인도에 도착한 다음 날, 인도에 대한 첫인상 등등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 곧 쓰러질 듯이 잠이 오긴 했지만, 송선교사님이 인도에 오신지 얼마 안 되었다고 본인을 소개하시면서 반가워하던 그 눈빛을 읽어서였을까...? 제일 뒤에 앉았지만, 애써 눈을 부릅뜨고 말씀을 들으면서 열심히 질문을 했었다. 물론 피곤해하는 팀원들과, 전달사항이 많은 간사님, 규진샘에게는 조금 죄송스럽긴 했지만... 
photo by 임성재 간사님.
 
   내가 이렇게 단기팀을 통해 많은것을 얻어갈 수 있는 것은, 의료봉사 와서까지도 좋은 숙소, 좋은 음식, 좋은 구경거리를 즐길 수 있는것은 분명히 선교사님들의 눈물과 땀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고 정말 감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 수고로운 손길을 아끼지 않으시는 선교사님들의 외로움을 채워드리고 힘을 실어 드리는 것이 임간사님의 말씀대로 단기팀의 목적 중에 하나가 아닐까...?

 진료가 거의 끝났을 때쯤 막간을 이용해 선교사님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선교사님의 장난스러운 표정이 참 다시봐도 반가운 사진이다. 마침 광주에 있는 모 교회에서 파견하신 분이라니... 혹시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국에서도 다시 뵙고 싶다. 나중에 돈 벌게 되면 조금이나마 후원도 해 드리고 싶고...

photo by ???

처음 들어와서 진료가 끝날 때까지 옆에서 놀던 아이들... 둘이 자매인데, 언니는 참 조용하고 둘째는 막내인거 티내려고 그랬는지 이쁨받으려고 귀여운 짓을 여럿에게 하고 다닌다.

photo by 기영.

이녀석... 안아달라고 하더니 딱 양 팔로 기영이와 내 목을 감더니 사진을 찍어달라고 쪼르더라...

photo by ???


 가운데 계신 현지 목사님께서 우리가 한국에 도착 할 때쯤에 사진을 보내주셨다. 사진 찍는 것을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까운 벗고 다시 옷 갈아입을 힘도 없고, 진료 마지막 날이니 짐옮길 때 내 옷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가운에 때묻히고 그냥 이대로 가려고 했는데, 이 때까지 가운 입은 사람이 나 밖에 없었는데, 이사람 저사람들이 사진을 찍짜고 하더라... 여기서는 하얀 가운과 청진기가 참 귀한 대접을 받는구나... 싶었다.
photo b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