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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2012인도

[2012.1.24] 진료 둘째날.

2012.02.23 02:10
 작성함.


#1.
   오늘은 개인적으로 좀 특별한 날이다. 국시 합격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햇뼝아리 의사들이 처음으로 환자를 보게 되는 날.

오늘은 이렇게 천막에서 진료를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큰 버드나무가 있고, 널찍한 평상이 하나 놓여져 있을 법한... 마을의 쉼터로 쓰이는 곳인 듯 하다.
photo by 기영.

드디어 이런 사진을 찍게 되었다. 졸업사진 찍을 시즌 즈음에 해서 사진관에 가서 한장 찍어둘까... 했었는데. 참 좋다.
photo by 은영누나.
 
   원래는 세팀에 본4를 제외하고 양방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선생님들이 고루 배정이 되어 있었는데, 어제 하루를 겪어본 다른 두 팀의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양방의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와 기영이도 투입되기로 한 것이다.
   국시공부할 때 규진샘이 카톡으로 종종 국시 열심히 공부하라고 응원해주시면서, 인도가서 진료하려면 열심히 해야된다고 말했었는데, 오늘이 그 날이 된 것이다. 어제 밤 자면서 설레기도 하면서... 내가 뭐 알 수나 있을까... 하는 게 걱정도 되었던 게 사실이다.

  꼬마가 배아프다고 했든가? 가슴이 아프다고 해서 왔던 것 같다. 비록 청진기를 들어도 이게 정상 심음인지 심장잡음인지 구별도 제대로, 아니 거의 못 하고, 정상 장음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면서도 청진기를 환자의 몸에 댄다는 게 참 부끄럽기도 했지만, 이렇게 기본적인 의료도 제공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어쩌면 의사의 어떤 처방이나 치료약 자체보다는 의사의 손길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용기내어 청진을 했다.
photo by 희은.
 
   국시공부하면서, 의사가 되면 내가 만나게 될 첫 환자와 사진찍어야지... 하는 단꿈을 꾸면서 공부를 했었다. 그리고 그 첫 환자는 아마도 공중보건의사로 부임?을 하고 첫 월요일 아침에 만나게 될 첫 환자분이리라 생각했는데, 인도에서 첫 환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위 사진에 있는 아이가 그 첫 환자는 아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정신없이 사람들이 밀려드는 데다가, 아무리 약속처방*이라고는 하지만 약이름, 복용횟수, 용량 같은 것을 하나하나 처방하는 건 아예 처음 해보는거라서 국시공부하면서 꾸었던 단꿈은 전혀 잊어버리고, 밀려드는 환자를 보고 처방하는데 열심이었던 것 같다.
 
*약속처방 : 증상의 중증도, 성인or소아 등등 환자의 상태에 따라 약품명, 용법(하루 두번or세번), 복용 일수 등등을 미리 정해놓고 그에 따라 처방을 하는 것.
 
   아참, 내 자리가 환자들이 혈압, 체온 등을 재고나서 처음으로 양방 진료 팀에게 오는 문턱에 있어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쉴새 없이 계속 환자를 봐야할 상황이었는데, 우리팀엔 양방진료의사가 나를 빼고도 네명이나 있었기 때문에, 빈자리로 친절하게 안내를 해 드렸다.(환자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스트레스 받으면 안 좋으니까?)

 문턱에서 가장 가까웠던 내자리. 그리고 뼝아리 의사를 열심히 옆에서 도와주시면서 진료를 한 하얀누나와 나.
photo by 기영.

 그리고 조금 더 안 쪽에서 진료를 본 예비 아주대 수련의, 전공의 선생님들.
photo by 민.

그리고 우리 대장님 태진이형. 오늘은 직접 진료는 안 보시고 혈압재시면서 사람들을 맞아주셨다. 아이들이 둘이나 있는 태진이형... 솔직히 부럽!
photo by 기영.
 
  다른팀도 인력배정이 비슷한 상황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듣고보니 양방의사 2~3분이서 3일 내내 진료를 보셨단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기영이와 나, 본4 두명이 나름 일당을 채운 것 같다는 뿌듯한 생각도 들었다.
 

#2.
   선교사님들은 3일동안 각기 다른팀과 각기 다른지역에서 사역을 하신다. 3일간 매일 같은팀은 만나시면 훨씬 더 수월하시려건만... 고국에서 찾아온 학생들에게 어쩌면 위험을 감수하시면서도 더 많은 것을 보여주시려고 일정들을 계획해 주신 것을 느끼면서 우리팀은 정말 복받았다고 생각했다.

#3.
   진료 중간에 태진이형이 해주신 영어에 비유한 방언 이야기가 정말 큰 은혜가 되었다. 기본 힌디어 표 아래 하나님이 바벨탑 사건 이후에 세상의 언어를 흩으신 성경구절이 있어서 나온 이야기였는데,
방언도 또한 하나의 언어와 같아서 잘하는 사람도 있고 조금 덜 잘하는 사람도 있으며, 사용하지 않으면 까먹는다는 이야기...
   그리고 고린도전서12장에서 온갖 은사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렇지만! 결국 뒤따라 나오는 13장에서 사랑의 은사가 가장  큰 것이며 사랑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 정말 큰 은혜가 되었다.
   정말 이 이야기를 나눠주면서 내 마음에 감동을 주신 태진이형에게는 내가 두고두고 감사해야 할 것 같다.


오늘의 점심은 포장된 탄두리 치킨과 vegiterian버거. 개인적으로 인도에 있는 일주일간 먹었던 탄두리치킨 중에 이번이 가장 맛있었던 것 같다. veg.버거는 내 입맛엔 영... 아니었지만, 역시 깔끔하게 하나를 해치웠다. 식사중에 결국 연애결혼 깔때기 토크로 하나된 우리...

photo by 기영.

 


#4.
   인도 아이들은 외국인에게 참 관심이 많다. 편하게 지리적 분류상 같은 아시아 황인종 계열이지만, 피부는 약간 더 하얗고, 콧대는 낫고, 눈도 더 작고, 대부분 쌍커풀도 없고, 키도 별로 크지도 않은... 하지만 조금 더 세련되어 보이는 우리 외국인들을 참 좋아한다.
   하긴, 나도 어렸을 때 시골에 살 때, 해질녘이면 밖에 나가서 공 차고 놀 때면, 늘씬하게 빠진 검은색 그레이하운드를 데리고 종종 출몰(?) 했던 외국인을 신기하게 쳐다보면서 쫄랑쫄랑 따라다녔던 기억이 난다.
  이 아이들은 우리팀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온통 모르는 동네에 와서 온통 모르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우리와 같이 경계심을 품고 다가왔을까...?

내가 볼 땐 그렇지 않았다. 아직 너무 어려서 엄마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아가들만이 이방인이 아닌 그저 엄마아닌 사람이라서 경계를 했을 뿐, 한참 뛰어노는 아이들은 그저 우리의 손 한번 잡아보고 싶어서. 눈 한번 마주치고 싶어서... 다가왔던 것이다.
photo by 희은.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아이와 같은 마음'이라는 걸 여러 현장에서 배우게 되는 것 같다. 나와 다르다는 의미를 틀렸다는 의미로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다가서는 아이들... 한치의 부끄러움 없이, 지저분한 손을 자기보다 얼굴이 하얗고 깔끔한 이방인에게 불쑥 내밀면서 놀아달라고 눈빛을 마주칠 수 있는 그 순수함...
   자기의 지저분한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 마음이 아닐까? 나이를 먹을 수록 자기 부끄러움을 보면 자꾸만 숨게 되면서 잊게 되는 그런 순순하고 당당한 어린아이의 마음...

 진료를 마치자 마자 아이들 속으로 뛰어든(?) 태진이형과 신이와 혜진이. 확실히 아이가 있는 아빠라서 그런걸까? 아이들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서 노는 태진이형을 보면서 빨리 아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photo by 기영.

아이들은 참 사진찍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참 잘 웃는다.
photo by 민.

진료캠프를 마무리 하면서 온통 포토타임.
photo by ???
 

#5.

   돌아오면서 곽선교사님을 따라서 뉴델리역에가서 기차표를 끊었다. 꼭 4년전 여행다니며 오갔던 길들을 떠올려보니 델리는 참 많이 변해있었다. 뉴델리역과 코넛플레이스 사이 거리의 중앙분리대 위에서 자고있는 걸인들도, 벽에 거울을 걸고 영업?을 하는 길거리 이발사들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몰라볼 정도로 수가 줄어든 싸이클 릭샤... 참 많이 변해 있었다.
   여전히 혼잡한 도로교통 상황만 빼고....

2007년 12월30일에 뉴델리역에 기차표를 예매하러 갔을 때...
photo by 종윤.


그리고 오늘 잠깐 뉴델리역에 들렀을 때...
뉴델리역도 나도 많이 변한 것 같다.
photo by 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