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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2007중국

Chapter7. 산골에서산골로&산골에서쿤밍으로(8,9일째)

2007.09.02 03:04
 작성함.

8월 6일 월요일(8일째).

 

 오늘은 SC에서 나가는 날.

 어제 많이 걸었던 탓인지 아침에 일어나는 게 조금 힘들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서 발을 디딜 때 종아리에 힘이 쭉 빠지는 그 기분이란...) 쿤밍을 떠나온 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고양이 세수로 아침 세면을 하고, SC에서 나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7시에 마을 광장으로 갔다.

 

 하루에 한 대 밖에 없는 SC마을에서 MJ마을(SC마을 들어오기전에 하루 묵었던 마을)로 나가는 버스. 그런데 이미 마을 사람들이 예약해서 우리 일행이 탈 자리는 없단다. 아침 일찍 나와서 차에 실었던 짐을 다시 내릴 수 밖에 없었다.



[PHOTO by 최상태 선생님]

아...버스에 자리가 없다니. 다른 차를 섭외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다행히도 오늘 저녁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가셔야 하는 WELL팀 선생님들이 탈 자리는 있어서, 여섯분의 선생님들 먼저 타고 가실 수 있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요 며칠간 우리 남쪽팀과 함께 사역했던 선생님들. 중국에서 WELL팀과는 이게 마지막일 듯하다.

 

 다른 차를 섭외하는 동안, SC마을에서 매끼를 먹었던 식당에 모여서 휴식을 취하면서 기다렸다. 어제의 피로가 덜 풀리긴 덜 풀렸는지 자리에 앉자마자 잠들어버렸다.(어제 숙소에 먼저 왔을 때 그냥 잘 껄 그랬나...) 아마 다른 몇몇 팀원들도 여기 저기 앉아서 새우잠으로 부족한 잠을 잔 것 같다.(SC에서의 마지막 밤이라는 뜻으로 밤을 지새운 몇몇 누나들을 포함하여.)

 

 한참 자다가 WELL팀이 놔두고 간 컵라면(from Korea)을 먹는다는 말에 벌떡 일어났다. 따뜻한 컵라면 하나를 다 먹고 나니까 마침 식당 앞으로 트럭 한 대가 도착했다.(아침 식사를 한지 두시간도 안 됐는데 컵라면이 빨려 들어가듯 하는 건 또 뭔지...에휴...) 원래 조금 더 빨리 올 수 있었는데, 트럭 주인 아저씨가 마작 하느라고 늦었다나...

 

 물론 이번에도 SC로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트럭 짐칸에 탔다. 들어올 때 토사로 막혔던 길이 마르고 보수작업이 끝나서 MJ마을까지 차로 나갈 수 있단다. 이런 반가운 소식이 있나...

 

 트럭의 짐칸 위로 쳐진 천막아래서 앞쪽에 트인 구멍으로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구불구불 울퉁불퉁 산길을 몇 시간 동안 달렸다. 이런 멋있는 오픈카가 또 있을까? 비록 건조한 날씨 덕분에 정면에서 날아오는 황토를 온통 뒤집에 쓰긴 했지만, 이정도 쯤이야 '자연 영화관' 관람비 치고는 뒤집어 써줄만하다. 카메라 배터리가 없어서 눈앞에 보이는 걸작품들을 담을 수 없는 게 恨.(일기장을 보니 카메라 배터리 떨어졌을 때부터 온통 아쉬운 이야기 투성이다. 참 사진욕심하고는...)

 

 그렇게 덜커덩 거리는 오르락내리락 산길을 따라 3시간여를 달려와서야 MJ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에 거의 도착해서는 짐칸에 사람이 타는 것을 적발해내는 공안 아저씨들을 위해 100M 밖에서 내려서 걸어와주는 팬서비스!

 

 쿤밍에서 출발한 날과는 달리 구름한점 없는 맑은 날씨에다가 한참 장이 열려 있어서 그런지 먼지가 엄청 날렸다. 말로만 듣던 미세 먼지입자들이 모공에 날아와서 콕콕 박히는 느낌이다.(물론 조금 과장된 표현!)

 

 SC로 들어가기 전날 머물면서 저녁식사를 했던 식당으로 갔다. 우리보다 일찍 나왔기 때문에, 늦어도 몇시간 전에는 이곳에 도착했을 WELL팀 선생님들이 계셨다. 먼저 와서 점심식사를 하시고, 우리를 기다리신 듯 하다.

 이젠 정말 WELL팀과 이곳에서 작별이다. 짧은 인사와 함께 한국에서의 재회(애프터)를 기약하며 거기서 헤어졌다. WELL팀은 한국으로, CMF팀은 점심을 먹고 다시 다른 마을로 이동해야한다.

 

 점심식사를 하고 짐정리를 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앞으로 다시 몇시간은 달려야하는 모양이다. 고속도로를 다시 타고 SP마을로 향했다.(방향을 안 물어봐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느낌상으로 대략 북동쪽으로 향한 것 같다)

 

 날씨는 맑음.

 푸른 산 사이로 쭉 뻗어있는 고속도로를 한시간쯤 달리다가 톨게이트를 지나고, 다시 굽이굽이 산허리를 따라 나 있는 도로 위를 달렸다.

 

 중간에 쉬면서 시원한 얼음물, 얼음콜라와 함께 간식타임도 즐기고, 차 안에서는 차창 너머로 보이는 절경을 감상하면서 오디오에서 나오는 찬양을 따라 부르기도 하고. SC에서의 피로가 채 덜풀린 상태로, 몇시간 동안을 구불구불한 산길을 차로 달리면 멀미가 날 법도하고, 지루할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함께니까.

 

 고속도로를 벗어나서 두세시간쯤 달렸을까? 오후 늦게 어떤 마을에 도착했다. 처음엔 이 SP마을이 우리가 가려고 했던 마을인줄 알았는데, 산길을 따라서 한시간쯤은 더 들어가야 한단다. K마을. 우리가 오늘 들어가야할 마지막 마을이다.(이름이 있었는데 SP마을만 기억이나서 이하 K마을이라고 하겠다)

 

 SP마을에서 쉬지 않고 바로 K마을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요 며칠간 내린 비 때문에 이번 산길도 말이 아니다. 승합차는 못 지나가고 트럭만 지나갈 수 있단다. 아무래도 SP마을에서 트럭을 구하기 전까지 기다려야하는 모양이다.

 K마을에서 우리를 먼길을 달려온 우리를 위해서 저녁식사를 준비 해놓고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짧은 순간이었지만 마음 한켠이 따뜻해진다. 그러면서도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괜히 미안해지는 마음이란 참......

 

 길 상태가 좋지 않은 K마을로 들어가는 트럭을 섭외하는 동안 마을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마침 여기도 오늘이 장날이라서 그렇게 먹고 싶었던 망고를 먹을 수 있었다.(해질 무렵이라서 거의 파장 분위기였지만 다행히도 과일은 살 수 있었다) 홍샘이 사오신 망고를 하나 집어들고 손으로 껍질을 벗겨서 나도 한입 옆에 있는 팀원도 한입. 작년 이맘 때쯤, 꼭 1년 전 방글라데시에서 칼로 썰어서 먹었던 망고와는 또 다른 맛인 것 같다.(과일도 손맛인가?)

 

 저녁식사를 하고 이를 닦을려고 식당에 있던 수도꼭지를 돌렸다. 황토물... 원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에라 모르겠다. 죽지만 않으면 되지. 황토물에 기분좋게(?) 양치질도 하고, 세수하면서 SC에서 나올 때 뒤집어 썼던 먼지도 씻어냈다. 타월로 얼굴을 닦아보니 하얬던 타월은 황토색이 되버렸다. 물 없어서 못 씻는 것보다야 낫지 뭐. 뭐든 기회가 있을 때 해야한다. 몸으로 알게된 중국에서 생존(?)법칙.

 

 후식으로 과일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섭외된 트럭이 식당 앞으로 왔다. 짐은 트럭 짐칸에 싣고, 사람은 D샘의 Jeep와 트럭에 나눠 타기로 했다. 나는 이번에도 역시 트럭 짐칸이다.

 

※ 이쯤에서 아까부터 한장도 안 나오는 사진 이야기 잠시...

 SC마을에서 JM마을로 가는 길에 배터리가 다 되는 바람에 사진을 더 이상 찍을 수 없었다. WELL팀 최상태 선생님의 카메라를 잠시 쓸 수는 있었지만, WELL팀이 쿤밍으로 돌아간 지금은 다른 방도가 없다.

 SP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김샘께서 식당 옆에 있는 전파상에서 휴대폰 배터리 충전기로 어떻게 해보자고는 하셨으나 휴대폰 충전기와 카메라 전압이 서로 안 맞아서 결국 쿤밍으로 돌아갈 때까지 내 카메라로 사진을 못 찍었다.

 하지만, 사역 마지막날 K마을에서 희문이형이 건네준 폰!카!가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K마을에서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다시 사진 등장!

 

 트럭 짐칸에는 9명이 탔다. 날도 어두워지고 있겠다, 하늘엔 낮동안 자취를 감췄던 별도 하나둘씩 반짝이기 시작했겠다, 찬양 퍼레이드는 다시 시작되었다. K마을까지 길 안내를 해주시는 여자분을 빼고는 모두 남자들이었기에 찬양퍼레이드는 정말 '강렬'했다. 박력이 넘쳤다. 군대를 다녀오신 선생님들과 간사님도 계셔서 '예비역 형님들'을 따라서 군가도 같이 씩씩하게 불러본다.

 이렇게 멋진 밤이 또 있을까...

 

 그렇게 한 시간쯤 좁고 울퉁불퉁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 시간 남짓 갔을까? 저 멀리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 더 가까이 가자 트럭 엔진소리를 듣고 후레쉬를 비추면서 마중나오는 마을 사람들. 아... 도착했다.(산속 마을은 칠흙같은 어둠이 깔려 있어서 손전등이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짐을 내리고, 마을의 유지의 집으로 보이는 집에서 모였다. 마을 사람들이 준비해주신 간식거리(해바라기씨, 사탕, 타마린드)들을 먹으면서 오늘 잠자리 문제와 내일 사역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했다.

 

 오늘밤은 SC마을에서와는 달리 마을 주민들의 집으로 각자 두세명씩 흩어져서 잔단다. 아직 공사 중인 빈 집에서 하늘에 별을 보면서 잠을 잘 뻔 했지만, 마을 사람들의 배려 덕에 다른 집에 가서 자게 되었다. 나는 백홍 간사님과 한 집에서 묵게 되었다.

 처음 도착했던 집에서 굽이굽이 집 사이를 지나 다른 집에 도착했다. 마당에 있는 수도꼭지를 틀어서(역시 황토물) 대충 양치질을 하고 얼굴만 씻고 자라고 내어준 방에 들어가 보니...음...

 흙바닥 위에 1인용 침대 하나. 눅눅해질대로 눅눅해진 겉보기에도 때묻은 솜이불. 음... 얼른 적응이 되진 않았지만, 빨리 적응할수록 좋은거니까 피곤하기도하고 해서 그냥 얼른 누웠다.

 

 방 문을 닫고, 이 집을 찾아오는 동안 앞길을 비췄던 손전등을 끄니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단 한점의 빛도 보이지 않는다. 눈을 떠봐도 온통 어둠과 침묵이다. 바로 옆에 한침대에 같이 누워 있는 간사님의 실루엣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이따금씩 마당에서 집주인 아저씨가 물담배를 피우는 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릴 뿐이다.

 

 눈을 꼭 감아도 여기저기서 눈꺼풀을 통과해서 빛이 들오는 일상과는 분명히 다르다. 눈을 떠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귀를 곤두세워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두렵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여기서 혹시 있을지도 모를 빈대나 벼룩이 걱정되서 바지위로 양말을 올려신은 것과는 다른 그것. 어둠과 침묵.

 의지할 건 하나 밖에 없다.

 눈을 뜬 채로 어둠 속에서 잠시 기도하고 잠을 청한다.

 

 

 

 

8월 7일 화요일(9일째).

 

 중간에 잠이 깨지는 않았지만, 잠자리가 불편하긴 했는지 피로가 풀릴 정도로 충분히 잔 건 아닌데, 느낌상 6시에 눈이 떠졌다. 다시 잠이 오지 않아서 눈뜨고 누운채로 그냥 멀뚱하게 있었다.

 

'북쪽으로 간 다른팀들은 매일 이렇게 잤을까?'

 

 오늘은 사역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짓고 쿤밍으로 돌아가야한다.

 

 간사님도 잠이 깨신 듯하다.(간사님 얼굴을 보니 조금 피로하신 것 같은게 간사님도 잠자리가 편하지는 않으셨던 것 같다. 혹시 내가 잠꼬대해서 이 좁은 침대에서 밀어내기라고 했을까? 괜히 머쓱) 같이 일어나서 어제 밤에 모였던 집으로 갔다.

 다른 팀원들은 씻고 거의 다 모여있는 것이 일찍 일어났나보다. 온수도 나온다는 반가운 소식에 나도 얼른 씻었다.(역시 황토물이긴 했지만, 그냥 샤워기 본김에 머리도 감았다. 씻고 나서 안 사실인데, 항상 황토물이 나오는 건 아니고 요즘처럼 비가 많이 내리고 난 후에는 한동안만 황토물이 나온단다)

 

 아침 큐티 시간을 갖고 짧게 sharing을 한 다음, 오늘의 사역이 시작됐다. 마지막 사역. 집이 지금까지 건강박람회를 했던 SC의 소학고, JM의 마을회관보다 작으니 공간을 최대한 잘 활용해야했다.

날씨는 보다시피 맑음.

담장 밑에서 접수와 혈압측정을 하고,

키와 몸무게를 재고,

시력검사를 하고,

마당에서 15명쯤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저 커튼으로 가려진 곳에서

우리가 준비한 보건교육 정규코스(?)를 수료(?)하고,

 

김선생님의 진료와 처방을 받은 뒤.

약을 타 가는 것으로 했다.(WELL팀 선생님들께서 약을 우리 쓰라고 두고 가셔서 K마을에서도 진료를 할 수 있었다)

 

 보건박람회를 두차례 하면서 조금이나마 노하우가 생겼는지 시작부터 아주 순조로웠다. 한국말에서 중국말로 중국말에서 소수민족언어로 두번에 거친 통역도 부드럽게 잘 되고, 질서 유지도 잘 되고, 보건교육에 집중도 잘 됐다.

 

 손씻기, 양치질 등 보건교육이 모두 한 곳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교육팀들도 짬을 내서 다른 일들을 도와줄 수 있었다.

특히, 지난 두차례 박람회 때보다 아이들과 더 많이 놀아줄 수 있었다.

그 동안 사역지에 풍선을 깜박하고 안 가져가서 숨길 수 밖에 없었던 멋진 실력을 발휘하는 희문이형.

희문이형은 양치질 교육을 하면서도

밖에서 길쭉한 풍선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잊지 않았다.

지연이누나도 교육팀과 약국일도 도와주면서 아이들과 놀아주기.

아이들은 작은 것에도 뛸 듯이 좋아할 줄 알고,

오른쪽 아이처럼 작은 것에 대해 기대하면서 목이 빠지게 기다릴 줄도 안다.

 

 어제부터 우리를 기다리다가 아침부터 몰려오는 사람들을 보다보니 또 점심때가 조금 늦어졌다.

중국에 와서 처음 맛보게 된 현지인의 밥상. 정말 맛있었다. 물론 맛있게 배부르게 먹으라고 있는 것 없는 것 다 내 주시면서 준비해주신 밥상이었겠지.

점심식사를 하고 쉬면서 잠깐 대문 밖에 나가보았다. 햇볕을 피해서 담벼락 아래서 차트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바깥보다 덜 더운 집 안에서 밥 먹고 쉬는 것이 괜히 머쓱했다.

 

 오후 박람회를 위한 준비(기념품 포장 등)를 할 때 보니 아이들에게 줄 풍선이 몇 개 남지 않았다. 그런데, 밖에 기다리시던 할머니가 집에 있는 손자에게 주고 싶으니까 풍선을 좀 풀어 달라고 한다는 희문이형의 말.

이 할머니,

귀여운 손자가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으셨겠지?

 

 오후 박람회는 비교적 한산했다. 마을이 작고 외진 곳에 있어서 그나마 가까운 마을에서도 걸어오기에는 멀었을 것이다.

 우리가 점심식사를 할 때 담장 밑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다 보건박람회나 진료 때문에 기다리는 것 아니었다. 몇몇 분들은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줄 풍선을 한두개 더 받아서 갈려고 했었던 모양이다. 아까 그 할머니처럼...

 

 한산해진 틈을 타서 나도 담장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일기를 썼다. 지난 일기에서 기록할려고 했는데, 빠진 것도 좀 더 적어보고, 오늘 일도 조금 적어보고. 벌써 흐려져가는 내 기억을 되살리는 방법은 내가 찍었던 사진을 상기해 보는 것이다.

'아, 오늘 이런이런 사진들 찍었는데 그 사진 찍을 때 이런 생각 하면서 찍었었지. 이 사진 찍을 때 주변에 뭐가 있었지.' 하면서...

길바닥에 한번 반사 됐어도 여전히 강렬한 햇볕에 피로해진 눈도 잠시 쉬어주고.(음.... 5일 동안 면도를 안 하고 지낸 게 여기서 훤하게 보인다)

담장밑에서 일기를 쓰고 있는데, 아까 내가 풍선으로 꽃을 만들어줬던 애가 와서 풍선을 쑥 내민다. 돌돌돌 돌려놓은 풍선 마디가 풀려서 다시 해 달라는 소리같다. 냉큼 손을 뻗어서 받아다가 다시 돌돌돌 말아서 만들어 줬더니 좋아라한다.

이번엔 한 아이들 더 데리고 오더니 앞에서 왔다갔다한다. 앞으로 불러다가 폰카메라를 꺼내니까 포즈를 잡는 아이들.(이제 보니까 둘이 닮은 것이 형제같다)

 

 풍선도 다 떨어지고, 건강박람회 기념품도 거의 다 떨어질쯤해서 박람회도 진료도 사역을 마무리를 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빨리 나가야 쿤밍에 많이 늦지 않게 도착해서 쉴 수 있기 때문에 김샘의 진료 booth와 약국만 남기고 모든 짐을 다시 packing했다.

K마을의 사역이 거의 마무리 되어갈 쯤 갑자기 나타난 공안 아저씨 때문에 조금 당황스럽고 걱정됐지만, 김샘의 태연한 대처와 태극무늬가 새겨진 부채 선물로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

 

 아, 드디어 사역도 모두 마무리가 됐고, 쿤밍으로 떠나기만 하면 된다! 쨔이찌엔~~!! 다시 트럭 짐칸에 올라서 K마을로 안내를 해주신 분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날씨는 여전히 맑다.

 

 다시 SP로 향하는 산길을 달린다. 덜커덩거리는 험한 산길을 달리면서 다시 찬양 퍼레이드를 시작했지만, 다들 피곤했는지 K마을로 들어올 때 같은 힘찬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햇볕이 강해져서 더워서 그런가보다. 찬양하다가 서로의 삶을 나눴다.

 한참 이야기하다가 피곤해서 눈을 감았는데,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계속 흔들리는 트럭에 걸터 앉아서도 잠들어 버리다니... 이런...

 

 한참 헤드뱅잉 하면서 잠에 취해서 오다보니 벌써 SP마을에 도착했다. 트럭에서 내려서 승합차에 짐을 옮겨 싣고, 바로 앞에 보이는 가게에서 물을 사서 마셨다. 트럭에서 내려서도 덜깬 잠을 확 달아나게 해주는 얼음물이 어찌나 그리 반갑던지...

 

 이제부터 굽이굽이 산허리를 돌아 고속도로를 타고 다섯시간만 가면 그리운 쿤밍으로 돌아간다. 꼭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창문에 머리를 대고 꾸벅꾸벅 졸다보니 어느 새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고속도로를 한시간쯤 달리다가 나타난 분기점에서 차가 잠시 멈췄다. 이쯤에서 우리팀과 D샘이 가는 길이 갈라진단다. 몇일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하는 동안 특유의 익살스러움으로 교감했던 D샘. 앞으로도 그의 앞날에 하나님께서 동행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Good-bye! Zai-jian!

 

 D샘과 헤어지는 건 아쉬웠지만, 시원하고 푹신한 차 안이라서 다들 긴장이 풀린데다가 많이 피곤한 상태라 쿤밍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저녁 7시가 조금 안 되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그렇게 배가 많이 고픈 상태는 아니었지만, 밥만 보면 식욕이 마구마구 돋는 우리 남쪽팀은 어쩔 수 없나보다. 아무리 느끼한 음식도 수저 옆에 차만 있으면 밥 몇 공기 해치우는 것은 일도 아니다. 여차여차 맛있는 저녁을 먹고 다시 차에 탑승!

 

 여행하는 동안 계속 함께 있었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한 백홍 간사님과 이야기하고 싶어서 간사님과 가까운 자리에 앉으려고 일부러 나중에 탔다.

 그리스도인의 삶, 애니어그램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지난 여정들을 되짚어 보며 기억속에 묻혀있던 은혜를 함께 발견해 보기도 했다. 역시 간사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재미있다. 평범한 대화 속에서도 위로를 얻고 활력을 얻을 수 있다. 어쩌면 간사님들이 바로 CMF학생들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분들일지도 모른다. 어떤 때는 학교생활의 세세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는 부모님보다도 더...(부모님 서운해 하실지도 모르지만 사실인 것 같다)

 

 그렇게 빵빵해진 배를 쓰다듬으면서 차 안에서 담소를 나누는 동안 벌써 쿤밍 톨게이트를 지났다. 날도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졌다. 창문 옆에 바짝 붙어서 턱을 괴고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야경을 즐겼다.

 

'아, 벌써 쿤밍에서 떠난지 5일이나 지났네.'

'참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낀 것 같다.'

'근데 부족한 일기는 어떻게 채운담...?'

'다른팀들은 이미 도착해 있을까?'

'북쪽에서는 무슨일들이 있었을까?'

'내일 팀별로 리포트 작성해야 된다는데, 우리팀은 뭘 쓰지?'

'3일 있으면 한국으로 돌아가네...'

 

 차 창문 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불빛을 흐릿하게 바라보면서 궁상을 떨다보니 어디서 많이 본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숙소까지 얼마 남지 않았구나! 숙소로 가는 길에 집이 있는 김샘을 먼저 내려드리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김샘은 내일 저녁에 각 조별로 리포트 발표할 때 숙소로 오신단다.

 

 

 *밤9시나 10시경

(정확한 시각은 기록을 안 해둬서 잘 모르겠다. 대충 느낌상으로)

 드디어 그리운 쿤밍 숙소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순간 너무 좋아서 소리를 지를 뻔 했다. 하지만 중국을 떠나기 전까지 끝까지 조심해야한다. 두 대의 승합차에 있던 짐을 조용히 모두 내려서 마당으로 들여놓고 나서 내 개인 짐을 들고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로 들어가니 오후에 먼저 도착한 LQ팀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북쪽으로 갔던 LQ팀, 고생이 많았을 것 같은데... 잘 다녀왔느냐고 물어봐 주는 게 여간 반가운게 아니다. 오후에 먼저 와서 묵을 때를 씻어낸 LQ팀과 이제 막 도착한 우리 남쪽팀의 대조되는 모습이란... 나도 얼른 올라가서 씻어야겠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과 한마디씩 나누고 얼른 방에 올라가서 씻고 짐정리를 했다. 짐정리를 하다가 숙소에 놔두고 갔던 내 성경책이 눈에 확 들어왔다. 순간 쿤밍에서 출발한 날 밤에 꿈이 생각나서 얼른 일기장을 뒤져보고, 빌립보서 2장 11절을 펴 봤다. 2장 1절부터 11절까지 '그리스도의 겸손'에 대한 이야기였다. 일단 적어놓고 시간을 두고 묵상해 보기로 했다. 그리스도의 겸손.(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뭔가 엄청난 깨달음을 주시리라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냥 지난 꿈이 너무 생생해서...)

 

 짐정리를 다 하고 씻고나니 정말 날아갈 것 같다.

 

 잠시 우리 팀원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간사님을 통해 내일의 일정에 대해 들었다. 앞으로 이틀 동안 충분히 sharing을 할 시간이 있으니 괜히 오늘밤에 잡담하다가 그 동안 느낀 것들 날려버리지 말고 기도하고 일찍 자라는 것, 그리고 내일 새벽에 YL팀이 숙소에 도착하면 어수선해서 중간에 잠이 깨면 충분히 쉬지 못하니까 일찍 자라는 것.(어차피 온몸에 긴장이 풀려서 오랫동안 이야기할 힘도 없었다)

 

 우리 방은 나를 포함해서 5명이 쓰는데, LQ팀 형들 2명은 다른 방에서 팀원들과 이야기하다가 자는 모양이고, YL팀 형들 2명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오늘 밤은 나 혼자 방에서 자게 되는 모양이다.

 

 방으로 와서 이불 속으로 파고 들었다. 온통 발을 쭉 뻗고 자고 싶은 생각뿐이었지만, 생각 한 구석에서 일기장에 몇 글자라도 쓰고 자라고 난리다. 트렁크에 손을 쭉 뻗어서 일기장과 펜을 집었다.

 

 펜을 들고 꾸벅꾸벅 졸다가 결국 정말 몇 글자만 적고 잠들어버렸다.

 

'이제 눈 뜨면 YL팀도 도착해 있겠네...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다.'

 

 

 

Chapter8.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