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4일 토요일.
6시에 눈을 떴다.
오늘은 SC마을의 5일만에 한번씩 여는 장날. 덕분에 어제 깊은 밤까지 계속되던 잔칫상에 오를 돼지들의 비명소리가 아직까지 귀에 맴도는 듯 하다.
비전트립 기간동안은 공동체 생활이기 때문에 늦장을 부리면 안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괜히 좀 더 누워있고 싶은 생각에 침대 위에서 뭉그적거리다가 씻고, 같은 여관에서 묵은 팀원들과의 아침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잠언18장 10절>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 오늘 하루의 모든 삶도 주님께 맡기며. 하지만 그 안전함이 결코 내 몸의 "편의"가 아닌, 그 분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평안이길바라며...
아침식사로 따뜻한 쌀국수와 산지직송 군옥수수. 언제나처럼 감사히 맛있게 먹고 베이스캠프 여관에서 짐을 챙겨서 건강박람회를 하게 될 학교로 갔다. 어제 대략 청소와 배치를 해 두어서 그런지 준비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SC마을의 소학교. 표준어사용, 청결유지, 학교를 집처럼 청결하게. 대략 이런 내용들의 계몽(?) 보드들이 학교 벽에 여기저기 붙어있는 걸 보니, 위생 및 보건이나 교육수준이 아주 낮은 건은 아닌 듯 하다.
어제 미리 와서 대략 구상했었던 동선에 따라서 1번부터 9번까지 booth의 자리를 잡았다.
신장 및 체중 지영누나.
소변검사 제은이형.
시력검사 언영누나.
수질(물관리) 교육 지연누나.
손씻기 교육 지애.
혈압측정 자해누나.
금주교육 윤호.
금연교육 혜진누나.
이 닦기 교육 희문이형과 혜림누나.
줄세우기 등 전체적 흐름관리와 시력검사 spare 백홍 간사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들 다 일할 때 셀카까지 찍을만큼 널럴한 찍사 겸 spare 민.(결국 널럴한게 들통나서 사람이 많이 밀렸던 시력검사 booth로 투입되었다)
그리고 통역을 도와주신 홍쌤, 병철이형 그리고 현지의 여러분들.
*8:30am
각 booth마다 인원이 배치되고, 건강박람회를 개시했다. 아침부터 비가 조금씩 와서 걱정했었는데, 박람회를 막 시작할 때 비가 그친 게 신기하고 감사했다. 접수대에서 우리가 미리 준비해온 차트에 대상자들의 기본적인 정보를 쓰고 각 부스를 모두 거친 다음, 기념품을 받고 WELL팀 선생님들께서 진료하시는 보건소에서 무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다.
멍멍이와 함께 학교 옆을 지나가던 아저씨도 무슨일인가 하고 학교 안으로 들어와보시고,
장날에 장보러 왔던 사람들도 떡 본김에 제사지낸다고 먼길 걸어서 장보러 온김에 짐 풀어놓고 순서를 기다려본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부스마다 사람들이 찼고, 측정과 검사,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다들 그 동안 열심히 준비한 것들을 열심히 쏟아내고 있었다. 이에 질세라(?) 나도 이 booth로, 저 booth로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사람들 앞에서 열심히 연습한 중국어로 우리가 알고 있는 아주 작은 위생보건 지식들을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 수첩에 써가며까지 연습했던 언어가 통하지 않자 세계 공통어인 body language로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
그렇게 한 시간여동안 사진을 찍었을까? 한참 들뜨고 즐거운 마음으로 사진을 찍으며 사람들 사이를 왔다갔다 하던 순간. 어떤 할머니 한 분의 얼굴에 몇초동안 시선이 고정되어버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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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이 분의 얼굴이 지금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에 유난히 나이들어 보이고 주름살이 가득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차...! 어떻게 이렇게 둔하고 무디어질 수 있단말인가. 이 땅과 이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을 놓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의 표정을, 눈빛을 놓치고 있었고, 그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놓치고 있었다. 우리가 사랑하며 품어야할 대상이 아닌 건강박람회의 "손님"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사람들 사이를 벗어서 계단 아래로 내려왔다.
조금 더 멀리, 뒤로물러서, 학교 입구에서 건강박람회가 한참 진행중인 학교 건물과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을 한동안 넋을놓고 바라보았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그것은 분명 우리가 교회에서, 캠퍼스에서 기쁨으로 예배를 드릴 때의 하나님의 마음과는 다른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계획하신 날에 이 민족을 회복시키실 것과 영광이 가득한 이 땅을 생각하니 흥분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순간 온몸이 전율한다.
♬Amazing grace를 흥얼거리면서 다시 박람회장으로 들어갔다.
하나님은 너도 사랑하신단다!
한자리에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열심히 땀흘리는 팀원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은혜였지만, 이따금씩 말은 통하지 않지만 팀원들과 눈을 맞추고 미소짓는 사람들의 모습을 멀리서 보는 것은 더욱 큰 은혜였다.
이닦기 교육 희문이형.
밀리는 혈압측정 booth를 도와주는 지연누나.
그렇게 각자 맡은 일에 열을 내서 일하다보니 금새 오전시간이 다 지나고 점심 때가 되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오는 사람들을 그냥 줄 서서 기다리도록 내버려둘 수가 없어서 늦은 점심을 한두명씩 돌아가면서 먹었다. (메뉴는 '밥차'에서 배달되어 온 따끈따끈한 self-볶음밥) 이 때부터 원래 통역을 도와주시던 선생님들도 보건교육 전선(?)에 뛰어 들어서 많이 도와주셨다.
수질관리교육, 손씻기 교육 등 기꺼기 발벗고 뛰면서 도와주신 병철이형.
점심시간 때가 되면서 조금씩 쉬고 싶어하는 우리들의 마음을 어떻게 아셨는지, 점심시간 때 즈음해서 한바탕 비가 쏟아져서 박람회장으로 오는 발길이 당분간 뜸하더니 식사를 하고 적당히 쉬고나니 다시 날씨가 갰다.
점심때가 지나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우리가 예상했던 오늘의 박람회 참여 인원은 약200~300여명. 하지만 오후타임이 된지 얼마 안되서 바로 준비한 물품들이 동이 났고, 중간중간 베이스캠프 숙소에서 물품들을 보충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보건교육팀에서 몰려오는 사람들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소수인원을 모아서 교육하던 방식을 20~30명을 모아서 한번에 교육을 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교육팀을 한 교실에 모아서 교육을 하게 됐다. 집중도도 높아져서 조금 더 효과가 큰 것 같았다.
오후 4시쯤이 되어서야 조금씩 발길이 조금 뜸해졌다. 그 후로도 사람이 계속 왔지만 이미 500여명을 위한 차트와 다른 물건들이 거의 떨어져서 곧 마무리를 해야했다.
오후시간, 박람회장이 한산해 지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네일아트, 페이스페인팅을 하면서 놀아주기도 하고,
언영이누나와 혜진이누나는 보건교육을 받기 위해 밖에서 기다리는 분들의 어깨도 주물러드렸다.
오후 6시쯤 되어서야 박람회를 끝낼 수 있었다.(well팀 선생님들께서 진료하시는 보건소는 이 때까지도 보건소 건물 바깥까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오후 늦게까지 말 그대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던 건강박람회와 진료소.
정말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주변의 마을에서 사람들이 몇시간씩 걸어서 장보러 온 김에 박람회에 와서 예상을 훨씬 넘은 인원을 만나게 된 것 같다.
한나절동안 몸은 지쳤지만 마무리까지!
수백명의 사람들이 밟고간 자리를 청소하고,
박람회가 끝난 후에도 이방인들이 신기한 듯, 자리를 떠나지 않는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했다.
처음보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안기고,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눈을 보면서 뭐라고뭐라고 쫑알대는 모습이 한없이 천진해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놀아주다가 지쳐서 떼어놔도 또 와서 등에 업히고 또 업히는 것이 짠해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부대끼면서 놀았는데도, 이 녀석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 달라붙는다. 잘 놀아주는 것도 해야할 일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온몸이 녹초가 되어버려서 나는 중도 포기. 아이들에게 GG를 선언한셈이었다.(다른 게 아니고 어린이사역 이게 정말 큰 일이구나...what a mass...)
이 아이들이 크면, 어렸을 때 자기와는 좀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 뭘 하고 갔는지는 잘 기억하지 못 해도, 자기들과 재미있게 놀아주더라는 기억은 남아 있겠지?
계단에 걸터 앉아서 한숨 돌리고 나서 보건소에서 진료하시는 well팀 선생님들을 기다렸다가 7시가 넘어서야 짐을 챙겨서 숙소로 돌아갔다.
보건소 약국의 창문 밖에서 신기한 듯이 안을 쳐다보는 아이들. 어느 사역지를 가든지 어린이 사역이 중요하다는 이유를 조금은 알 듯 하다. 먼저 관심을 가지고 먼저 다가오는 아이들...
특별 메인메뉴로 개구리탕이 나온 늦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한 숙소에 모여서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이 첫 사역이었는데, 하룻동안 있었던 일과 각 booth마다 결과보고 및 개선해야할 점 등을 나누는 시간.
서로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들을 open mind로 나누는 것은 공동체에서 맛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기쁨이다.
각 사람마다 느낀 은혜들이 다양했지만, 예상치 못한 다수의 인원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동안 적절한 때 적절한 날씨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비롯하여 감사할 점이 너무도 많았다는 것은 모두가 함께 느낀점이었다.
모두가 한명씩 돌아가면서 sharing을 했다. 다들 피곤한 상태였지만 꼭 필요한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
내일 가게될 JM이라는 마을로 가는 길도 지난 며칠동안 내린 비로 유실되어서 많이 걸어야되니까 일찍 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라는 광고를 마지막으로 밤12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sharing이 끝났다.
sharing이 끝나고 더욱 풍성해진 마음을 안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렇게 이리저리 뛰면서 땀흘리며 하루를 살았건만, 피곤하고 귀찮은 생각에 씻는 것은 애시당초 포기했고, 고양이 세수만 하고 침대로 가서 일기장을 펴서 끄적끄적 한마디씩 썼다.
결국 오늘도 일기장 위에서 꿈나라로...
Chapter6.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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