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9일.
주일 저녁예배가 끝나자마자 본격적으로 짐 보따리(?)를 꾸리기 시작했다. 일주일 내로 다녀올 여행이나 수련회 같으면 출발 30분 전에 후다닥 챙겨서 갈만도 하지만, 거의 2주일 동안 다녀올 여행인데다가, 사진을 담당하게 되다 보니 가방이 하나 더 늘었다. 메모리와 배터리 관리도 잘 해야될 것 같아서 USB케이블, 충전기, USB 메모리스틱, 삼각대 등등 카메라하고 렌즈만 달랑 챙겨갈 문제가 아닌 거였다.
비전트립 클럽 공지사항에 떠 있는 준비물, 생각날 때마다 그때그때 메모했던 휴대폰 메모를 총동원해서 커다란 트렁크 입을 벌리고 하나씩하나씩 침을 챙긴다.
그럴 일이 있으리라는 걱정은 별로 안 하지만,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옵션으로 토요일에 사두었던 칼로리 바란스, 비타민C도 챙겼다. 그리고 나는 필요없을지라도 혹시나 필요한 사람이 있으리라는 생각에 한두명 몫도 더 챙겨본다.
그 동안 나름대로 여행을 다니다보니 짐을 챙길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나는 필수품 이외에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다면 항상 필요 이상으로 챙기는 것 같다. 나 자신은 물론이고, 옆에 있는 사람이 정말 작은 것을 가지고 곤란한 상황을 겪는다면 괜히 마음이 언짢아지는 게 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준비했던 정말 작은 것이 그 사람의 필요를 채워준다면 그 만큼 감사하고 행복한 것도 없는 듯 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챙겨갔던 option들을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가져왔다고 해서 후회하진 않는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우산을 들고 나갔다가 하루종일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경우랑 별반 다를 게 없다.
어차피 짐 한 두개 더 챙겨서 번거롭고 귀찮아지는 건 나지만 그냥 인생 보충수업이려니 생각하고 챙겨간다. 정규수업이 아닌 보충수업. 선택하지 않으면 편하지만 선택하면 그만큼 얻을 수 있는 보충수업......
주절주절.....
7월30일
*3:00am
아무튼 그렇게 몇시간에 걸친 짐 챙기기는 끝났다. 새벽4시 버스를 타야하니까 30분쯤 남았다. 한동안 읽고 있던 책이 한권 있는데, 30분동안 그 책을 마저 읽고 가면 딱 맞겠다. 안 그래도 짐이 많은데, 그 몇십페이지 안남은 책을 들고가긴 뭐하니까 이자리에서 후딱 해치워야지.
*4:00am
터미널까지 부모님의 배웅을 받고,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새벽 버스에 오른다.
한참 성수기는 성수기라서 그랬는지 토요일에 이 티켓을 예약할 때 28석 중에 남은 자리가 두자리 밖에 없는 상태에서 구한 티켓이라서 더 감사할 따름이다.
인천공항행 버스에서.
꼭 1년전 이맘 때에도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새벽 버스에서 펜을 들었었는데... 역시 여행은 내가 펜을 들게 만든다. 여행 중 '그 순간의 느낌'은 나중에 다시 되새길 수 있을 것 같아도, 나중에 가면 사진이나 동행자와의 대화만으로는 결코 생생하게 기억해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일상생활 속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내게 있어서 여행은 더욱 그렇다)
집에가면 나에게 그때 그 이야기를 들려줄 녀석들.
여행은 현장에서도 많은 것을 보고 배우지만, 준비하면서도 상당한 것들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특히 이번 여행처럼 100% 자원해서 능동적으로 공부하고 묵상한 여행은 말이다.
처음엔 무언가를 멋지게 해내야겠다는 일념하에 준비하고 묵상하고 기도했지만, 막상 여행전 수련회라는 관문을 거친 지금은 그런 생각을 많이 내려놓은 듯하다. 적어도 얼마 전보다는 일보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돌아선 느낌이랄까?
*6:00am
천안삼거리 휴게소.
버스에서 책 읽으면서 올까 했는데, 시간이 시간인지라 불을 꺼버리니 어쩔 수 없지. 안 그대로 수련회 끝나고 주말에 잘 못 쉬었는데, 나도 눈 좀 붙여야지. 최근에 고속버스, 관광버스를 줄기차게 타게된 덕분에 이번에 야침차게 준비한 에어쿠션을 베고 천안까지 한숨 푹 잤다.
천안에서 인천까지 가는 동안 기도편지를 전해준 사람들에게 문자로라도 다녀오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잘 다녀오라고 먼저 문자 보내주는 사람도 있고, 내가 보낸 문자 받고 잘 다녀오라고 답장해 주시는 사람도 있고, 답장 따로 안 해도 기도할테니 잘 다녀오라는 사람도 있고.
100여통에 달하는 문자. 비록 휴대폰 요금제로 한달에 주어지는 기본문자를 벗어나는 범위는 아니지만, 아마 한통에 30원씩 요금이 부과된다고 해도 문자를 보내지 않았을까? 휴대폰 문자요금 3천원으로 기도로 동역해주는 사람을 얻을 수 있으니까.
*8:00am
인천공항 도착.
이번주 부터 본격적인 휴가철이라서 그런지 아침일찍부터 많은 인파로 수속대마다 붐볐다.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려보니 대부분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다. 조금 더 기다리고 있으니까 한두명씩 계속 도착한다. 사람이 어느 정도 모인 후에 밥 안 먹은 사람들끼리 밥먹으러 갔다. 서울에서 온 사람은 상관 없지만,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밥 안 먹고 온 사람이 꽤 있었다.
마중나오신 조형욱 간사님. 소문으로 듣던 간지폭풍?
출국 전 짐수속 중... 무슨 짐이 이렇게 크고 많은지 트렁크 하나씩 잡고 문열고 들어가도 되겠다. 진짜 떠나긴 떠나나보다.
아침식사 동역자들과 함께 배를 채우고 출국 수속장에 가보니 모두 다 모였다. 항공티켓 및 그룹비자 조별로 모여서 짐수속을 마치고나니 이제야 떠난다는 게 실감난다.
짐수속도 마쳤다. 이제 비행기만 타면! ^^
*11:00am
출국심사, 세관을 통과하고 이제 시간 맞춰서 탑승만 하면된다.
시간이 두시간이나 남아서 각 항공기 탑승 조별로 면세점에서 놀다가 게이트 앞에서 모이기로 했다. 하지만 결국 다 흩어져서 개인플레이, 사조직 플레이하다가 탑승했다는 거.
혹시 서점에 퍼즐책이나 있으면 사다가 비행기에서 놀려고 했는데 그런건 없는 모양이다. 그냥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다가 점심때가 되서 그런지 배고파서 패스트푸트로...
참새방앗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결국 지나가던 팀원들도 배고팠는지 냄새를 맡고 패스트 푸드로 모였다. 역시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 하하^^
*1:00pm
boarding time이 다 됐는데도 나타나지 않는 우리팀 사람들 때문에 한동안 소동이 있었지만, 무사히 탑승.
잠을 거의 안 자고 왔는데도 아침에 별로 안 피곤하길래 괜찮은가보다 했는데 비행기 좌석에 앉으니까 피로가 몰려온다. 타자마자 자는 것 보단 옆에 있는 사람과 교제의 찬스를 적절히 활용하기! 두번째 준비모임 때부터 다음 모임 때까지 큐티 나누미였던 정희누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도 모르는 새에 잠이 들었다.
인천->상해 비행기. 창가에 앉게 되었다.
꽤나 깊이 잠들었는지 눈 떠보니 기내식이 테이블 앞에 놓여 있었다. 잠도 덜 깬데다가 바로옆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너무 강해서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일용할 양식은 언제나 감사히, 깨끗하게 먹었다.
기내식을 다 먹고나서야 눈에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역시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 매일 보고 사는 하늘이지만, 이렇게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하늘과 구름은 역시 새롭고 아름답다.
황해 바다를 건너 중국으로 가는 하늘길. 뿌옇게 황토빛으로 흐린 하늘을 한참 지나 해안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위에서 내려다본 상해 연안의 바다빛은 1년전 내가 처음봤던 이국의 바다, 말레이반도 해안의 에메랄드빛과는 많이 달랐다. 황토빛 바다. 괜히 황해(yellow sea)는 아닌가보다.
기도편지를 통해 많은 기도의 동역자들을 등 뒤에 두고온 때문일까? 막상 비전트립을 놓고 싶은 기도를 많이 하지 못 했지만, 동역자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하다. (이런 뻔뻔한 마음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건지 참...) 하여튼 아직까지 불안감이나 걱정은 없다.
*1:40pm
상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인천에서 상해까지는 거리가 얼마 안된다. 여기서 여정이 끝난게 아니다. 짐을 찾아서 쿤밍까지 가는 국내선 비행기로 환승해야 된다.
상해공항 도착. 건물이 여러 동으로 되어 있어서 그런지 오히려 인천공항보다 규모가 커 보인다.(실제로 더 큰지는 모르지만)
상해에 도착해서 본 거지만 비행기 날개에 이렇게 쓰여 있더라...
DO NOT WALK OUTSIDE THIS AREA
밖에서 여기 위로 걸어다니지 마시오.
친절도 하셔라 ^^
짐을 찾아서
환승하러 갑시다.
국내선 환승 짐수속을 마쳤다. 이제 비행기만 타면 쿤밍으로 간다.
틈 날때마다 비전트립 찍사의 셔터 작렬! ^^
아직은 여유만만 ^^
공항이 참 예쁘다.
탑승전 서점에 있던 반가운 DVD표지 하나.
*4:00pm
쿤밍행 국내선 비행기에 올랐다.
다시 피곤해졌다. 한숨자고 일어나자 마자 다시 기내식. 얼떨결에 또 깨끗하게 해치우고 일지를 쓴다.
지금 기분은 음... 아직은 공항, 비행기만 왔다갔다 해서 잘 모르겠다. 가봐야 알겠지. 걱정되는 건 없다. 다만 함께 하는 이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선을 이루어 나가길...
*7:00pm
쿤밍에 도착.
국내선이라 외국인도 따로 입국 수속같은건 없다. 짐만 챙겨서 나가면 되는 일.
쿤밍이라는 도시.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것 같다. 상해에서보다 이방인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더 많이 느껴진다. 이곳에서 우리는 외국인이다. 이제부터 긴장감을 가져야한다.
드디어 쿤밍 도착.
마중 나오신 선생님들과 짧게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팀원들에게 장미꽃을 한송이씩 선물해 주시는 게 인상적이었다.
숙소로 향하는 버스에 탔다. 피곤하긴하지만 도시 분위기도 알아두는 게 좋겠지?
공항에 마중나온 선생님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숙소로...
우리를 맞아준 쿤밍시의 하늘이다.
반갑다는건지... 안 반갑다는건지...
원래 이 맘때쯤해서 장마철은 지나고 다시 건조한 날씨일텐데, 올해 유난히 날씨가 요상스러워서 비가 계속 온다는 선생님들 말씀.
하지만 우리가 공항에 도착했을 때 비는 그쳐있었다. ^^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그 사이에 벌써 어둠이 자리를 잡았다.
날씨가 흐리긴 했지만 오묘한 하늘빛과 가로등의 주황 불빛이 나름분위기 있어 보인다.
쿤밍은 운남성의 성도답게 꽤 번화한 도시같다. 길도 넓고, 고가도로, 인터체인지도 엄청 복잡하게 보이고, 고층빌딩도 상당히 보인다.(물론 낙후되어 보이는 빌딩들도 많이 보이지만)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어디서든지 100m도 안 움직여도 보인다는 교회 십자가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지금 중국이구나...
버스 맨 뒷자리에서 도시 풍경(밤이긴하지만)을 감상하는 중에 앞에서는 주의사항 전달이 이루어졌다. 전화 통화할 때 극히 조심할 것, 그것보다 되도록 전화하지 말 것. 아무데서나 크게 기도하거나 찬양하지 말것. 단체로 움직일 때 튀는 행동 하지 말 것. 생각보다 조심해야할 부분들이 많았다.
이곳에서 장기간 사역하시면서 작은부분들까지 염려하시고 주의사항을 말씀해 주신 것이리라. 조금 불편하고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순종해야겠다.
*8:00pm
숙소에 도착했다. 동네 주민들 눈에 최대한 안 띄도록 신속하게 차에서 내려서 짐을 들고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 시설이나 주변 환경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좋았다. 원래 기숙사로 사용하던 것인데, 방학이라 우리팀을 위해 비워주었다고 한다. 깨끗히 써야지.
각자 배정받은 방에 짐을 풀고 야식으로 중국 컵라면을 먹었다. 분명히 하루 세끼, 아니 다섯끼는 족히 먹었을텐데 여전히 컵라면 하나가 족히 들어갈 정도라니... 기내식부터도 그렇고 식사가 대체로 입에 잘 맞는 것 같다.
그렇게 야식을 맛있게 먹고 간단하게 씻고, 방 사람들과 잠깐 이야기 나누다가 일찍 잠들었다. 정말 피곤했는지 어떻게 누웠고 어떻게 눈 감은지도 모르겠다.
내일부터 사역에 대한 오리엔테이션과 사역에 필요한 물품 준비작업에 들어간다. 여전히 기대하는 마음이 크다 ^^
Chapter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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