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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2010의대생이야기

[의대생story③]이해 안 돼?그냥 외워!:의학입문-1

기사원문

http://www.mycong.com/news/articleView.html?idxno=6783

2009년 07월 13일 (월) 11:53:04


 

 

 

[의대생story③]이해 안 돼?그냥 외워!:의학입문-1

뼈저린(?) 골학 스터디, "그냥 외워"?

 

 

  예과 2학기 기말고사를 끝으로 용봉동 생활을 마무리 지은 예과생들은 이제 학동의 본과생활 준비를 하게 된다. 예과1,2학년 동안 선배들에게 지겹게 들어왔던 본과생 공부. 그 시작은 겨울방학 골학(骨學) 스터디부터다. 

※골학 스터디란, 본과 1학년이 1학기의 메인 교과과정인 해부학 수업을 듣기 전에 앞서서 겨울 방학 때 일주일동안 선배들로부터 뼈에 대해서 배우고 공부하는 시간이다. 해부학 수업이 의과대학 4년 중에 가장 큰 학점을 차지하고 있고, 교과과정상 수업시간도 가장 많지만 그것도 시간이 모자라서 해부학 중에 뼈에 대한 강의는 거의 생략하다시피 하고 바로 해부학 수업으로 들어간다.

 

 

 

▲ 해부학 때 주로 활용하는 해부학 plate와 통째로 달달 외워야할 해부학 노트. 설명 없이 해부학 그림만 있는 책이라서 책이라고 부르지 않고 플레이트라고 부른다. 가끔씩 저 플레이트를 머릿속에 스캔을 뜨는 브레인들도 나타나지만 대부분 처음 보는 그림과 용어들에 당황스럽고 어려워한다.

 

  골학 스터디 일주일동안 예과생들은 그 동안 단 한 번도 체험해 보지 못했던 공부의 세계, 아니 암기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다. 차분히 하나하나 곱씹어 가면서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생소한 해부학 용어들. 그림을 봐가면서 머릿속으로 위치를 그리기에는 너무나 방대한 분량. 골학 스터디가 중반쯤에 접어들면 머릿속에서는 이해하고 넘어가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얼른 외우고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이른바 선암기 후이해 전략이다.

 

▲ 뼈, 골학, 하면 뭐 있나. 우리 몸의 206개의 뼈 이름만 다 외우면 될 것 같지만, 골학 내용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뼈 하나에도 수십 개의 구조물이 있기 때문이다. 그 구조물들을 토대로 주위에 인접한 뼈들과의 위치관계까지 모조리 암기해야한다.

 

  우여곡절 끝에 일주일간의 해부학 스터디를 마치면 나도 이제 뭔가 본과생이 될 준비가 되었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일주일간의 스터디가 너무 힘들어서 울면서 겨울 골학 스터디에서 중도 하차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아니면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아 하루 이틀 따라가 보다가 나머지 3,4일은 하루 종일 멍하게 있는 이들도 있다.(전문용어로는 멍 때린다...가 되겠다.)

 

▲ 의과대학 신강의동 모습.

 

 겨울 스터디를 무사히 마치고 학동 캠퍼스에 입성하면 이 곳 신강의동에서 모든 수업을 받게 된다. 용봉동에 있을 때와는 달리 한 학년 140여명이 모두 하루종일 한 강의실에 않아서 강의를 듣게 되고 시간표에 따라서 교수님들만 교대해서 들어오시게 된다.

 

  용봉동에서는 월수금요일은 보통 50분 수업, 화목요일은 90분간 수업을 듣게 되지만, 학동에서는 보통 한번에 2시간동안 수업을 듣게 된다. 중간에 쉬는 시간을 주시는 교수님 수업은 그나마 괜찮지만, 쉬는 시간 없이 2시간을 내리 달리는 교수님의 수업이 많은 1학년 1학기 초는 적응하느라 참 많은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 학동은 한 학기 시간표가 책으로 나온다. 1년 동안 하루하루 시간표가 매일 다르기 때문이다.


 

 

▲ 따스한 봄날의 답답한 시간표. 거의 매일같이 8교시 수업을 듣기 때문에 6교시까지 수업을 듣는 날이면 감사할 정도이다.

 

  이제 슬슬 학동 생활에 적응할 무렵이면 해부학 실습을 시작하게 된다. 시신기증자와 유족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안고 엄숙한 분위기 아래 집도식을 거행한 뒤 처음으로 메스를 잡고 시신의 가슴을 여는 것으로 시작된 3월 말의 해부학 실습은 슬슬 무더위가 시작되는 6월까지 계속된다. 수업시간에 배웠던 인체의 장기 하나하나를 들어내고 근육층을 하나하나 들어내면서 보게 되는 인체의 신비는 가히 경이롭다 표현할만 하다. 법적으로 시신을 해부할 수 있는 사람은 해부학교실 스텝(교수이상)들과 조교, 법의학자, 그리고 의과대학 본과1학년 학생들 뿐이다. 이렇게 영광스러운(?) 본과1학년은 아무나 할 수 없고 볼 수 없는 해부학 실습을 하게되는 대신에 그만한 댓가를 치르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해부학 실습실 포르말린 냄새이다. 몇 개월간 이어지는 실습이기에 시신을 보존하기 위해 포르말린 용액을 사용하는데, 서너시간의 해부학 실습을 마치고 나면 머리카락이고 옷이고 온 몸에 포르말린 냄새가 배어있다. 의과대학 선배들은 이것을 보고 1학년의 향기라는 반어적인 표현을 쓴다. 본인들도 힘들었던 해부학 실습을 했던 추억이 있기에 고생하는 1학년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포르말린 냄새에 코를 한번 찡긋하고는 웃으면서 지나간다. 

※시신을 해부하는 현장의 사진은 유출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글로만 표현함을 밝힌다.(시신 기증자와 유족들에 대한 예우인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해부학 실습실을 검색해도 사진이 몇 장 나오지 않을 뿐더러 간혹 사진이 올라오는 블로그들이 몇 개 있는데, 이것은 엄연한 불법 행위임을 알아두도록 하자. 

  의대생 하면 주로 해부학이라는 수업을 떠올리게 된다. 실험복처럼 생긴 하얀색 혹은 수술복처럼 생긴 녹색 실습복을 입고 메스를 들고 해부학 실습을 하는 의대생의 이미지가 가장 적당하겠다. 사실 필자도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하나씩 하니씩 배우고나니 해부학은 정말 4년의 과정 중에 극히 일부였으며, 극히 기초적인 학문이었다. 7학점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비중이긴 하지만 정말 극히 기초적인 과목인 것이다.

 

▲ 본과1학년 1학기 때 배워야 하는 과목들이다. 아래서부터 해부학, 생리학, 면역학, 생화학, 신경해부학, 조직학, 태생학. 학점 상으로는 23학점이지만, 의과대학에서 1학점이란 용봉동처럼 60분이 아니고 120분 수업이기 때문에 굳이 따지자면 40학점을 가뿐히 넘는 커리큘럼이라고 볼 수 있다.

 

  고된 의과대학 새내기들. 실제로 따지자면 보통 4년제 대학의 3학년에 준하는 학년이지만, 의과대학 선배들의 입장에서 보면 여전히 휘몰아치는 의과대학 커리큘럼에 허덕이는 후배들로만 보인다. 

  시험 하나하나, 과목 하나하나가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는 고난의 연속이지만, 자신만의 길을 찾아서 어찌어찌 해쳐 나가는 의과대학 학생들을 보면 참 놀라울 따름이다. 혹자는 의대생들은 머리가 좋아서 그런거라는 말을 던지기도 하는데, 물론 그런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이 말에 공감하는 의대생들이다. 

  머리 좋은 것과, 수업 잘 이해하는 것과 잘 외우는 것, 그리고 시험 잘 보는 것은 모두 다 별개더라... 

  의과대학의 상상을 초월하는 방대한 학습 분량에서 살아남으려면 잘 이해를 해서 중요한 것을 캐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일단 죽어라 외워야 된다는 것을 모두가 느끼고 있다. 암기력 좋은 사람이 죽어라고 외워봤자 출제 방향과 빗나가게 외워버리면 다른 문제는 전혀 손도 못 대는 슬픈 현실이다. 

  이도저도 아닌 것 같아서 갈피를 못 잡는 후배들이 간혹 선배들에게 질문한다. 

“이거 어떻게 해야돼요? 이해는 전혀 안 되는데, 시험은 봐야겠고 어떻게 하죠?” 

 선배들은 가벼운 미소와 함께 간단하고도 명료한 진리로 답변한다. 

“그냥 외워”

 

 

 

 

 

필자 曰 : 의과대학 공부 이야기를 한 번에 담으려 했는데, 전해드리고 싶은 이야기들이 너무 많군요. 이번 편에서는 주로 본과1학년 시작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의과대학 이야기를 써 내려가다보니 말이 길어지는군요. 다음 기사에서는 주로 의과대학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쓸까 합니다. 1년에 본시험만 60여회를 치르는 본과1학년 이야기를 위주로 쓸텐데요. 다음 편부터 조금씩 다른 학년의 이야기도 담도록 하겠습니다.

 

 

 

......[의대생story④]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