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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2006방글라데시

첫째날 - 설레임.두려움

2006.08.05 15:43
 작성함.

#. 한국시간 2006년 7월 29일 새벽0시

28일 밤11시쯤에 기독병원 다락방에 도착해서 짐 배분을 했다. (세관 통과 문제가 있어서 약을 한 가방에 몰아서 담으면 안됐기에 각가 가져온 트렁크에 조금씩 나눠 담아야 했다.) 출발에 앞서서 찬양하고 기독병원 목사님 말씀을 들었다. 선교지에서 승리의 기준은 얼마나 베풀었느냐, 몇 명의 환자를 진료했느냐가 아니라 선교지가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를 통한 회복과 성장의 場이 되도록 하여 돌아올 수 있느냐는 말씀이였다. 준다는 생각보다 받고(배우고) 온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마음속으로 떠나는 선교여행이 되길 바란다는 말씀도 하셨다.

20명의 팀원들. 집이 인천이라서 공항에서 합류하기로 한 순정이형 을 제외하고 19명 모두가 모였다. 이렇게 많이 모인 것은 모든 준비모임을 통틀어서 처음이다. 목사님 말씀 후에 서로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했다. 이번 팀은 학생들이 많이 참석하게 되서 평균연령이 많이 낮아졌다고 한다. 나는 20살 예과1학년. 여태껏 내가 가장 막내가 될 줄 알았는데, 출발할 때 와서 보니 중학교2학년 지영이가 한명 있었다. 그래도 내 위로는 본과 형들과 인턴 선생님들과 그 이상 되시는 선생님들 밖에 없으니 막내인 셈이다.



#. 한국시간 2006년 7월 29일 새벽1시

광주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이다.

항상 첫 시작은 설렌다.

여태껏 덤덤하던 내 마음도 마지막 준비모임을 갖고, 기독병원 목사님 말씀을 들으니 새삼 먼 땅으로 떠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번 단기의료선교가 첫 출국이다. 매체가 많이 발달하여 얼마든지 외국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외국, 특히 공식적인 포교 활동이 금지되어 있는 무슬림 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참 더 깊이 주님을 알기 위해 고민하는 나에게 주님은 그 곳 방글라데시 땅에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실 것이며 보여 주실까? 다른 팀원들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떠나는 것일까? 선교에 있어서 팀원들과의 단합이 중요하다는데, 얼굴 본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이름도 겨우 생각나는 이 사람들과의 어색함은 얼마나 빨리 허물어질까? 인천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일지에 적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 한국시간 2006년 7월 29일 대략 이른 아침

방학중이라서 평소 같으면 한참 자고 있을 시간인데, 버스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서 짐을 내리고 있다.(몇 시간을 잤더라도 버스 안에서는 눈 감았다가 뜨면 잠깐이다.)

이 곳이 그 말로만 듣고 티비에서나 봐 왔던 인천국제공항인가~! 처음 공항에 들어가서 축구해도 넉넉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 아직은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보이진 않는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아침식사를 하고, 형제들은 병역사무소에 출국신고를하고 와서 짐 수속을 마쳤다. 짐 무게가 많이 나가서 조금 걱정이 됐는데, 짐 수속을 할 때 많이 봐줬다고 한다.

이제 이륙이다. 잊지 못할 첫 출국이자 첫 의료선교.

군미필자인 우리 형제들은 병무청에서 발급해준 해외여행 허가서를 들고 공항 한 구석에 있는 병무사무소(맞나?)로 갔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참 아름답다. 푸른 물결 사이를 가르는 배들도 평화로워 보인다.

 

 

#. 싱가폴시간 2006년 7월 29일 오후 2시 10분(한국시간 3시 10분)

6시간동안 비행기를 타고 경유지인 싱가폴에 도착했다. (싱가폴은 한국시간보다 한시간이 늦다.) 착륙 준비 안내 방송을 들으면서 창밖을 보니 정말 다른나라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나라같이 푸른 바다가 아닌 에메랄드빛 바다였다. 에메랄드빛 바다에 도시 이곳저곳에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녹지공간들. 참 조화로운 도시국가. 내가 수천미터 상공에서 바라본 싱가폴의 첫인상이였다.

공항 안은 온통 영어밖에 없다. (@.@;) 왠지 어색한 기분이 들었지만, 곧 적응 되려거니...하고 형들 따라서 이리저리 구경하러 다녔다. 공항 면세점들을 돌아다녀보면서 돌아오는 길에 싱가폴에 들러서 기념품으로 뭘 사가면 좋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돌아다녀보면 돌아다녀볼 수록 재밌는 것이 공항인 것 같다.

싱가폴 공항에서 한 컷 찍었다. 자매들은 공항에서 우~하고 모여서 사진을 찍는게 어색한지 같이 안 찍었다.

City tour를 할 때까지 시간이 남아서 공항에 있는 버*킹에서 맛있는 햄버거를 먹었다.

 

방글라데시 다카까지 가는 비행기 출발 시간까지 남은 시간이 많아서 오후5시에는 관광 버스를 타고 싱가폴 Ciry tour를 했다. 우리 엄마보다 나이가 좀 더 들어보이시는 아주머니께서 설명을 해 주셨는데, 본인의 영어가 짧은지라 대강대강 들으면서 옆에 계신 선생님들께 보조 설명을 들으면서 나름대로 도시 감상을 했다. 싱가폴은 참 깨끗한 도시이다.(물론 기준은 대한민국) 고층빌딩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으면서도 웬만한 중저층 빌딩만한 나무들도 그만큼 많이 있어서 ' 고층빌딩이 많은 도시라서 황량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도로변에 이제서야 겨우 자리를 잡고 매연을 잔뜩 뒤집어 쓴 채로 커가는 가로수가 왠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도시 여기저기에 조성되어 있는 근린공원도 많아서 나같이 뛰어 오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이 정말 좋아할만 하다.

싱가폴에는 교회는 거의 보이지 않고 이슬람 사원들과 성당이 가끔 하나둘씩 보이긴한다. 이곳도 아직까지 복음이 많이 전파되지는 않았나보다.

고층빌딩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 보인다.


고가도로 높이까지 자라있는 나무들의 윗부분이 보인다. 그만큼 조경이 잘 되어 있는 도시이다.

멋있는 차 앞에서 사진도 함 찍어보고 ^^

공항 구경 다니느라 피곤했던 다리도 풀어주고.

 

#. 싱가폴시간 2006년 7월 29일 오후 8시 30분

싱가폴발 다카행 비행기에 탑승을 한다. 탑승 수속을 마치고 대기하는 동안 라운지에 있는 컴퓨터를 잠깐 이용해서 손관희 선생님과 일촌도 맺고, 전남대CMF클럽에 글을 남겼다. 한글이 안 써져서 순간 떠오르는 단어들만 골라서 곧 출발하는데 기도해 달라고 한마디 내리썼다.(이곳에서 인터넷을 써보니 한국이 얼마나 인터넷이 발달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비행기에서는 김위황 선생님과 동익이형 사이에 앉게 되었다. CMF학생들의 활동에 관심이 많으신 김위황 선생님께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렇게 교제하는 동안 선생님이 그저 친한 선배님으로만 느껴졌다. 주 안에서 하나된 공동체 안에서 후배는 선배들의 많은 관심과 함께 인생의 어드바이스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

 

#. 싱가폴시간 2006년 7월 29일 오후 11시 20분

사람들은 대부분 잠이 들었고 비행기는 바다 위를 지나는지, 육지가 구름에 가리워진 건지 불빛 한 점 보이지 않는다.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땅  방글라데시. 비록 눈에 보이진 않지만 마음 속에 그 땅이 그려진다... 우리나라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가난하면서도 생활에 대한 행복 지수는 우리 나라를 훨씬 앞서는 그 나라. 전체 국민의 99%를 넘는 사람들이 예수를 모르면서도 자기 삶에 행복해 하는 그 나라. 그 나라 사람들의 눈을 가장 먼저 보고 싶다.

 

#. 다카시간 2006년 7월 29일 오후 10시 30분

(방글라데시는 싱가폴보다는 2시간 늦고 한국보다는 3시간이 늦다.)

한국에서 처음 비행기를 탄지 거의 13시간만에 도착한 것 같다. 게이트를 통해 공항에 들어서니 기분이 묘해지는 냄새가 난다. 몇일 지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냄새는 내가 다녀본 곳에 온통 풍기는 냄새다.(어쩌면 이 나라 고유의 향(?)이 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내용, 후각은 가장 둔해서 적응을 잘 한다는 것이 말만은 아니였는지 그 냄새에 금새 적응하고 얼른 숙소로 가고 싶다는 생각 뿐이다. 다카 공항은 인천공항과 싱가폴 공항에 비해서 국제공항이라기엔 시설들이 턱없이 열악하다.

다카 공항에 막 도착했다.

 

공항 밖으로 나가는 마지막 관문인 세관. 한마디로 정말 허술(?)하다. 20명이나 되는 외국 사람들이 커다란 짐 수십개를 카트에 싣고 지나가니까 뭐냐고 물어보길래 선생님들이 "코레안 누들. 코레안 누들." 하니깐 그냥 가라고 한다. 세관 통과하면서 우리끼리 눈 마주치면서 얼마나 키득 거렸던지...^^;;

세관을 무사히 통과하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

커다란 짐이 대략 30여개 (@.@;;) 굉장히 많다.

 

공항 밖으로 나왔다. 헉....숨이 턱하고 막힌다. 한 밤 중인데도 습도가 엄청나고 온도도 장난이 아니다. 나오자 마자 온 몸에 땀구멍이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 특유의 냄새도 더 심해진 것 같다. 공항 밖에서 짐이 잔뜩 실린 카트를 잡고 현지 선교사님들이 마중 나오시길 기다린다. 한밤 중에 떼거리로 다카 공항에 도착해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방인들은 우리 뿐이다. 주위의 시선이 온통 우리팀에 쏠린다. 한밤 중에 피부는 나보다 쪼~~금 더 까만 사람들이 눈만 땡그랗게 뜨고 우리를 쳐다보는 것이 조금은 두려웠다.

박무열 선교사님께서 차를 몇대 이끌고 마중나오셨다. 팀 리더이신 김위황 선생님, 전에 KOICA파견으로 방글라데시에서 일을 하셨던 정현균 선생님과 간단한 인사를 하고 짐을 싣었다. 짐을 싣고 있는데, 아까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현지인 남자들이 우리 짐에 달라 붙어서 짐을 나르는 것을 도와주려한다. 선교사님께서는 이들이 짐에 손을 못 대게 하라고 하셨다. 나는 이 사람들이 그냥 좋아서 도와주는 건 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이렇게 짐을 들어주고 돈을 요구하는 것이였다. 짐을 다 나르고 승합차에 탄 나를 아주 빤~~~히 쳐다보면서(내가 받은 느낌은 그 남자가 나를 노려보는 것이였다.) 돈(짐을 나른 수고비)을 달라고 손을 벌리던 한 청년의 눈빛을 한동안 잊을 수가 없었다.(방글라데시 사람에 대한 첫인상, 두려움과 함께.....)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부모님으로부터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옛날엔 서울역 근처에도 원하지도 않는데 짐을 들어주고 돈을 달라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 다카시간 2006년 7월 29일 오후 11시 30분

그렇게 마음 한구석에 작지만 무거운 두려움을 가지고 숙소인 꼬람똘라병원 게스트 하우스로 향했다. 밤인데도 날씨는 무덥고, 비는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고...... 마음이 무겁다...... 단편적인 환경만을 바라보며 두려움을 마음에 모신(?) 내가 이곳에 빨리 적응해서 기쁘게 사역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방글라데시는 중앙분리대 외에는 차선이 없다. 신호등도 없다.(마지막날 알게된 것이지만, 다카의 아주 번화가에 가면 차선도 아주 짧은 구간에 있고 신호등은 다카시내에 딱 3군데에 있다.) 차들도 온전한 차를 찾아보기 힘들다 다 찌그러지고 부서지고 덜덜 거리면서 검은 연기를 뒤로 뿜어대며 무섭게 달리는 차들 뿐이다. 그렇게 중앙 분리대가 있는 도로는 그나마 차를 탈만 하지만, 좁은 길로 들어서면 덜컹덜컹 거리는 것이 장난이 아니다. 가끔씩 몸이 공중에 붕~하고 뜨기까지 한다. 한국의 웬만한 시골길보다 더 노면이 울퉁불퉁하다.

숙소인 꼬람똘라 기독병원 게스트 하우스에 막 도착했다.

숙소는 엄청 좋다. 침대도 있고 에어컨도 있고, 침대는 단순히 편하게 잘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넘어서 바닥에 기어다니는 벌레들에게 물리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도 하는 듯 하다.

 

이렇게 긴 여정을 거쳐 늦은 밤, 숙소인 꼬람똘라 기독병원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다. 숙소에 짐을 다 옮기고 우리 남학생 6명이 쓸 방을 보니.....(☆_☆) 앗!! 이게 웬....침대에 에어컨까지 있다. 우리집보다 더 좋다. 감동이다. (ㅠ_ㅠ) 하지만 감동은 온몸으로 표현하기엔 체력이 바닥난 상태. 대충 샤워를 하고 간단하게 하루 일들을 일지에 남기고 새벽2시. 침대에 눕자마자 깊은 잡에 빠진다. 새벽 6시 30분에 기상이라는 사실에 안타까워 하면서.....

 

- 둘째날에 계속 ^^ M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