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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2006방글라데시

다섯째날(사역 셋재날) - 아름다움.작별

2006.08.11 05:18
 작성함


#. 다카시간 2006년 8월 1일

방글라데시에서의 마지막날 아침이 밝았다. 오늘도 역시 병원 교회에서의 아침예배로 하루를 열었는데, 오늘은 특별히 우리팀이 어제밤에 열심히 연습한 축복송과 율동찬양이 특별무대(?)로 준비되어 있었다. 말씀봉독을 한 후에 2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강대상 앞으로 줄줄이 나와서 기타반주에 맞춰 박수치고 율동하며 찬양하는 모습은 그들에게 꽤나 신선한 모습이였는지 미소짓는 사람들도, 조금은 당혹스러워하는 사람들도 보였다.(우리가 드렸던 4번의 예배 중에 악기가 등장한 것은 이 때 한번 뿐이였다.)


당신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

당신을 통하여서 열방이 주께 돌아오게 되리

당신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

당신을 통하여서 열방이 주께 예배하게 되리

기타 반주에 맞춰!

 

비록 우리말로 찬양을 했지만 우리가 그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길 원한다는 마음은 충분히 전달 되었으리라...

 

오늘 가게 될 방글라에서의 마지막 사역지는 리세텍이라는 마을이다. 승합차로 10분쯤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갔다. 저 멀리 파란색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가 탄 차는 학교 앞에서 멈췄다. 우리는 오늘도 역시 많은 구경꾼(?)들에게 둘러 싸였다. 학교 크기는 어제 갔던 쿠다보 마을에 있는 학교와 비슷한데, 특이한 점은 모두 한칸으로 된 건물인데 중간중간에 커다란 나무 칸막이를 세워서 교실을 구분해 놓았다는 것이다.

오늘 진료소로 쓰게 될 리세텍 마을의 학교다. 내부는 모두 한 칸이지만 칸막이료 교실이 구분되어 있다.

파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보인다.

 

오늘은 학교가 우리팀의 일일 진료소로 쓰이게 그런지, 아침 10시도 안 됐는데 아이들은 곧 집에 갈 분위기다. 우리는 오늘의 진료를 위해 책걸상을 세팅했고, 그러는 동안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학교 밖에서 줄을 세워서 집에 돌려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줄을 맞춰서 서 있다.

 

아이들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거나 우리팀이 진료하는 모습을 구경하려고 학교 창문 여기저리고 고개만 빼꼼히 내놓고 안에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구경했고, 진료를 받을 아이들은 번호표를 받고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오전 10시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진료를 시작했다. 오늘은 방글라데시에서의 마지막 날이라서 오후엔 다른 일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전진료만 할 계획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오늘은 어제 쿠다보마을의 학교에서 축구를 하느라고 많이 하지 못 했던 전도까지 정말 열심히 하리라 다시한번 다짐을 하고 약을 받으려고 기다리는 환자들 옆으로 다가갔다. 그렇게 몇 명과 이야기했는데, 언제부터인지 송락종 선생님과 순정이형의 심부름이 마구마구 쏟아져 나왔다.

"액티피드 9일분만 가져다 주라~"

"아네모 5일분짜리 3일분으로 좀 나눠서 담아줄래~?"

"약국에 타리비드 있나 좀 보고 와~"

"겐타마이신 연고 좀 한팩 퍼와~"

.

.

.

.

.

송락종 선생님과 순정이형, 그리고 내가 있는 진료실은 다른 두 진료실과는 달리 칸막이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서 나는 교실 문을 지나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들 한무리를 뚫고 옆방을 왔다갔다했다. 더운 날씨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인지 몇번 왔다갔다 하지 않았는데도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그러다가 조용히 땀흘리면서 왔다갔다하다가 자리에 앉으면 맥이 탁 풀리곤 했다.

하지만 할일은 해야지! 송락종 선생님과 순정이형 눈치를 봐서 금방 어떤 일을 안 시킬 것 같으면 약 탈려고 기다리는 사람 옆에 조용히 다가가서 인사를 건네고 메시지를 전했다. 가끔씩 자신은 무슬림이다, 힌두교인이다 하고 먼저 밝히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오늘도 역시 크게 거부반응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나님께 감사 또 감사~! ^^ 그러는 와중에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앙증맞은 목소리로

"My name is......"

내 두눈과 두귀는 그 귀엽게 생긴 여자 꼬마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었고, 몇마디 짧은 영어와 메모지에 적어 놓은 벵갈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나눴다. 엄마 따라서 놀러왔댄다. 엄마는 바로 옆에서 약 타갈려고 기다리고 있고...(대충 맘,맘 하면 엄마인줄 알아듣고, 메디신,메디신하면 약인줄 안다)

예쁘게 웃으면서 말하는 꼬마를 빤히 쳐다보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에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으흠~" "음..." "아~!" 하면서 들어주고 있는데, 또 심부름 거리들이 생겼다. 몇번 약국을 왔다갔다 했는데 꼬마는 내가 들어올 때마다 문을 바라보고 있다가 나하고 눈을 마주친다. 아마 더 이야기하고 싶었나보다. 이야기할려고, 아니 이야기 들어줄려고 앉을려고 하는데 또 약국을 갔다올 일이 생겼다. 갔다오니 꼬마는 엄마손을 잡고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엄마손을 잡고 문밖에 나가서도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는 것이 정말 이야기하고 싶었나보다.

내가 저만할 때 외국인을 봤으면 어땠을까? 저렇게 먼저 다가가서 활짝 웃으면서 외국인이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안녕하세요 아저씨~ 저는....." 하고 말을 붙일 수 있었을까? 꼬마의 순수한 호기심에 다시한번 surprised~!!

 

꼬마 사진을 한장이라도 찍어두고 싶었는데 워낙 정신이 없던 상황이라서 생각지도 못 했다. 10여일이 지난 지금도 그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렇게 정신없이 도우미를 하고 전도를 하다보니 어느새 기다리는 환자들도 점점 수가 줄어들고,(오전동안만 진료한다고 미리 말을 해 둬서인듯 하다.) 시간은 오후 1시가 되간다. 안에서는 조금씩 조금씩 짐을 싸고 뒷정리를 했고 밖에서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뒷풀이 레크리에이션이 있었다. 풍선도 불어주고 기타치면서 노래도 부르고...

풍선불어주고 아트풍선 모양을 만들어 주는 건 지영이가 젤 수고를 했다.


시원한 그늘에 앉아 기타치며 찬양을...

선생님들 표정이 넘 좋죠? ^^

 

아쉽지만 마지막 사역지와도 인사를 할 때가 되었다. 학교 앞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단체사진을 찍고 숙소로 돌아왔다.

 

[ 단체사진을 분명 찍었는데 사진을 못 받았다. ]

[ㅡㅡ+ 누구세요~ 메일로 빨리 사진 돌리세요~]

 

게스트 하우스에 와서 점심을 먹고 짐을 꾸렸다. 생각지도 못 하게 방글라데시에서 맛보게 된 환상적인 뷔페식 식사를 하는 게 이것이 마지막이라니... 아쉬울 따름이다. 큰 트렁크 가방들은 짐을 잘 챙겨놨다가 저녁에 공항에서 받기로 하고 간단하게 들고 다닐 가방만 가지고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것을 보려고 나와 있었다.(사실 구경꾼도 많이 있었다 ^^;) 병원 앞에서 사진을 찍고, 다카 시내로 향하는 승합차에 몸을 실으니 정말 다카에서의 몇일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벌써 떠날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꼬람똘라 기독병원 앞에서

2006 방글라데시 다카 의료 봉사

광주의료선교훈련원, CMF

 

앞에서 말했던 오후에 있을 다른 일정들이란 기념품 매장에 가는 것과 몇몇 선교사님들 가정과 저녁식사를 하는 것이다.

 

*방글라데시에 있는 동안 산을 하나도 보지 못 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평지 뿐이였다.

산이 안보인다.

저 멀리 보이는 것도 지평선 뿐.

 

다카에 도착해서 공항에서 병원으로 갈 때와 마찬가지로 중앙분리대만 있고 차선은 없는 큰 길을 따라 차를 타고 downtown으로 향했다. 시내로 접어드니 검은 연기를 뿜어대는 자동차와 릭샤가 쉴새없이 왔다갔다하는 것이 딱 downtown에 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내 가슴을 울게 만드는 장면이 눈 앞에서 펼쳐졌다. 우리가 타고 있는 승합차의 문을 애처로운 눈빛으로 똑똑 두드리는, 아이를 업은 여인이 보였기 때문이다. 많이 야위어 보인다. 무언가를, 아니 단언컨대 구걸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정말 측은해 보인다. 선교사님들도 안쓰럽게 생각은 하지만 이들에게 돈을 주면 수십명의 구걸하는 무리들이 우리를 둘러쌀 것이 분명하니까 그냥 외면하는 게 좋다고 하셨다.

 

나는 비단 지금 이 때 뿐만 아니라 누군가 말을 못하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나에게 성금을 요구할 때마다 항상 이런 갈등의 길 위에 선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성경이 말하는 '이웃사랑'을 실천해야할 것인가. 아니면... 그렇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런생각을 한두번쯤은 해 봤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크리스챤이라면...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항상 어떻게 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여차여차 두대의 승합차를 타고 온 20명의 팀원들은 쇼핑 센터로 갔고 쇼핑을 시작했다. 첨엔 당연히 모든 것이 신기하고 사고 싶기만 하지만 몇바퀴 둘러보니 그 중에 정말 사고 싶은 것이 눈에 보였다. 내가 샀던 기념품들을 공개하지 않겠지만, 괜찮아 보이는, 한국에 와서 실제로 써보니 정말로 괜찮은 제품들이 정말정말 싸다는 것! (사실 그래서 다카를 떠나면서 좀 더 살 걸 그랬나...하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쇼핑을 몇 시간동안(사실 난 대부분 구경만했던 시간) 하다보니 벌써 해가 질려고 한다. 예약했던 스카이라운지(?)의 레스토랑에서 여러 선교사님들 가정과 만나서 식사를 했다. 도시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멋진 곳에서 식사를 하면서 몇 번 정전이 되기도 했다.(선교사님 말씀. 방글라데시는 현재 전력부족이다.) 선교사님들의 아이들과 교제하면서 식사를 했다. 선교사이자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아버지, 또는 선교사이자 간호사란느 어머니 아래서 커가는 아이들 역시 의사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해질 무렵. 산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비행기 이륙 2시간 30분 전 다카 국제공항 앞, 이젠 정말 헤어질 시간이다. 이 공항은 바로 출국장 입구에 세관이 있기 때문에 공항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선교사님들과 선교사님들 아이들과, 그리고 삼일동안 더 병원에 남아서 수술실 일을 돕기로 하신 정현균 선생님과 작별인사를 했다.

여기는 다카공항(직접 찍은 사진이 없어서 그냥 퍼왔다.)

 

밤 11시쯤이나 되었을까? 이젠 비행기가 이륙할 시간이다.

이 곳 사람들의 말로는 완전히 표현할 수 없는 순수함 속에 묻혀서 헤어날 수 없었던(^^;) 4일. 긴장이 풀렸는지 몸은 나른해지기 시작하고 눈꺼풀은 무거워지기 시작하지만, 머릿속은 오로지 행복함 하나로만 가득 차 있다.

 

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 잊을 수 없으리라 입으로 가만히 벙긋거려본다.

 

덥고습한기후도 아름다운 이 땅 방글라데시.

검은피부색도 아름다운 이 땅 방글라데시.

산이없어도 아름다운 이 땅 방글라데시.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이 땅 방글라데시.

푸른나무가 아름다운 이 땅 방글라데시.

삶의여유가 아름다운 이 땅 방글라데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지으신 이 땅 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를 사랑합니다. 진심으로...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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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비록 볼 품 없이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 뿐인 글솜씨지만 제가 보고 느낀 것들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한마디 쓸 때마다 더 나누고 싶은 걸 어떡합니까~ (@.@;;) 방글라데시에서 금요일날 돌아오자마자 그 다음주에 CMF집중학교를 갔다오는 바람에 후기 완성이 좀 늦어졌습니다. 후기를 새벽에만 썼는데, 쓸 때마다 방글라 생각이나서 사진보면서 한참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아서 오래 걸리기도 했구요 하하~! ^^;;

여러분이 저의 글을 읽으면서 조금이나마 감동이 되고 도전이 되었길 바랄뿐입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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