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유연재/2006방글라데시

넷째날(사역 둘째날) - 삶.순수

2006.08.11 01:59
 작성함.

#. 다카시간 2006년 8월 1일

사역 둘째날. 오늘은 꼬람똘라 기독병원에서 릭샤(자전거를 개조한 인력거라고 보면 된다)로 5분정도 거리에 있는 쿠다보라는 마을로 갔다.


짐은 승합차에 실어서 미리 보내고 릭샤를 병원 앞으로 불러서 타고 갔다. 콜택시(?) 같은 셈이다.

릭샤는 아무리 길이 험해도 어디든 간다!

쿠다보 마을의 학교이다. 어제 진료했던 곳 보다는 시설이 상당히 좋다. 외관도 조금은 더 학교 같아보인다.

도착하자마자 사진을 찍었다. 전날 하루를 겪어본 결과 일을 마치면 너무 힘들어서 사진찍기가 힘들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

오늘도 주의 사랑으로 환자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진료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 주옵소서.

 

교실 내부로 들어가니 여기저기 붙어있는 학습카드가 눈에 보였다. 영어 단어 카드와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 등등... 무엇보다도 영어 낱말 카드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ㅠ.ㅠ) 다카 공항을 나온 이후로는 사역지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무슨 오묘한 그림같이 보이기만 하는 벵갈어 뿐이였기 때문이다. 내심 영어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서 많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리라는 은근한 기대를 가지고 일을 시작했다.

이곳 학교는 3개의 교실이 있는데, [선생님 두 분] [선생님 두 분], [선생님 한 분+약국] 이렇게 진료하기로 했다. 어제밤에 회의를 한 대로 기본적인 약 처방은 각 방의 조제부에서 해결하고 부족한 약품들만 약국에서 가져다 쓰기로 한 것이다.

약국 + 김위황 선생님 진료실

이기라 선생님 + 조경은 선생님 진료실

송락종 선생님 + 김동익 선생님 진료실(칠판 위로 영어 낱말 카드가 보인다.)

 

나는 송락종*김동익 선생님 진료실에서 전도팀 겸 잔심부름을 하게 되었다. 진료을 받고 조제부 앞에서 약을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을 주 대상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고 틈틈이 조제부에서 부족한 약을 약국에서 가져다 주기로 한 것이다. 환자들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그곳 학교의 선생님들께서 해주셨기 때문에 진료실 문을 지키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오늘도 역시 첫 사람에게 첫 말 한마디를 꺼내는 것이 어색하고 힘들기만 했다. 게다가 할 일도 별로 없는 것 같아서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학교 전경을 찍기 위해서.

그런데 학교 밖에서 카메라를 들고 왔다갔다 하는 나에게 몇몇 아이들이 다가오더니 해맑게 웃으면서 자기들도 찍어달라고 손짓하는 것이였다. 웃는 게 어찌나 그렇게 예쁘던지 사진을 안 찍어줄 수가 없었다.

이 곳 아이들은 절대로 카메라를 피하거나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지 않는다.

 

한두번 찍어주니까 아이들이 구름떼 같이 몰려들어서 혼자서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순간 머리에 번쩍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회는 이때다!" 하고 내 이야기를 좀 들어보라고 하고 복음의 메시지를 전했다. 아이들은 눈을 땡그랗게 뜨고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였고, 고개도 끄덕이면서 잘 받아들여 주었다.

아이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그 많은 아이들을 등뒤로 하고 다시 진료실로 들어가기는 뭔가 아쉬웠다. "그렇지!" 무릎을 탁 치며 진료실로 달려가서 같은 진료실에서 전도팀 겸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던 기열이형을 불러서 같이 한번 더 메시지를 전하고 아이들과 축구를 하자고 했다.

할줄 아는 말이라고는 안녕하세요하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인 복음의 메시지 밖에 없는데 어떻게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할 수 있었느냐고? 내가 벵갈어를 구사할 줄 아는 것도 아니였고 많은 아이들 중에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지만 나는 전 세계인의 공용어인 바디 랭귀지에는 아주 능숙했기 때문이다. ^^γ 하나님께 감사.

온갖 손짓 발짓 표정을 써서 몇명대 몇명 팀까지 짜서 축구를 했다. 학교 운동장이 잔디밭이라서 딱 보면 뛰어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가 없다. 축구를 하면서 느낀 건데, 방글라 사람들은 참 마음에 여유가 넘치고 욕심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나라에서는 동네 축구든 초중고등학교 축구 대항전이든 서로 골을 넣을려고 공을 받기만 하면 상대팀쪽으로 공을 잡고 달려가기 마련인데, 그 곳 아이들은 골에 연연하지 않고 그냥 공을 주고 받는 것을 즐기는 듯 했다. 일단 공을 받으면 앞로 잽싸게 달려가지 않고 같은팀 누군가에게 공을 넘겨준다. 그렇다고 그것을 보고 끈끈한 팀웍이라고 볼 수 있는 건 아니였다. 아무튼 난 아이들의 그런 모습들을 보고 새로운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저 멀리 흰 모자를 쓰고 축구하는 코레아 청년 민이가 보인다.

의료선교 와서 나하고 같이 축구선교를 한 기열이형

놀랍겠지만 이 아저씨도 같이 축구하고 놀았다는 거~!

 

그렇게 땡볕에서 20~30분쯤 축구를 한 것 같다. 더워서 죽는 줄 알았다. (@.@;;) 헥헥 거리면서 그늘에 앉아서 나와 기열이형을 둘러싸고 있는 아이들을 한명한명 봤는데, 이 녀석들은 땀 한방울 안 흘리고 있다. 나는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땀을 흘려서 옷이 온통 다 젖어버렸는데 말이다.(말 그대로 사실이다. 온통) 그렇게 그늘에서 쉬면서 숨을 좀 돌리고 더 많이 모여든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복음을 전하고 한번씩 읽어보라고 전도지를 나눠주었다. 서로 주라고들 난리였다. 그리고 열을 좀 식히고 들어갈려고 하는 나에게 아이들은 난 아무말도 안 했는데, 과일도 가져다주고 물 마실거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다시한번 감동과 함께 신선한 충격이였다.

아이들과 한참 신나게 축구를 하는 동안 진료받으러 온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밀려 있었다.

 

한참 그런 아이들의 순수함 속에 빠져서 쉬고 있는데, 빨리 와서 진료실 일을 도와달라는 소리를 듣고 냉큼 달려갔다. 헉... 환자들이 조제부 앞에 엄청 몰려 있다. 내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축구선교(?)에 빠져 있는 동안 조제부에 부족한 약을 제대로 갖다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내 역할을 또 소홀히 했다는 생각에 빨리 빨리 움직여서 일을 도왔다.

약국/ 조현미, 정희진

김위황 선생님 투약부/ 조세진

조경은 선생님 투약부 / 윤희진, 조현주

이기라 선생님 투약부/ 지역, 예지(사진이 없네)

송락종 선생님 투약부/ 문순정

김동익 선생님 투약부/ 최지은


다행히 빠른시간내에 밀린 환자들에게 약을 처방해서 보내서 도우미들이 없어진 사이 분주해졌던 진료실 분위기도 가라앉아서 다시 진료실에서 전도를 할 법도 했지만, 아직도 몸에 열이 안 식어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환자들을 쳐다보고 "예수님은 당신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하고 말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후진료까지 진료실에서의 전도는 잠시 미뤄두기하고 계속 부족한 약을 진료부에 가져다 드렸다. 이젠 사람들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웃으면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는데... 점심은 간단하게 컵라면으로 때우고 선생님들도 아이들과 우리팀 학생들이 잔디밭에서 뛰어노는 모습으로 보면서 잠시 refresh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은 역시 뛰어 놀 때가 가장 밝아 보이는 것 같다.

점심은 컵라면. 방글라데시에서도 이열치열?

땀을 뻘뻘 흘리며  컵라면을 먹었다. 민이의 머리에 흐르는 저 정체모를 윤기...^^;

선생님들은 즐겁게 뛰어노는 현지의 아이들과 우리 학생들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고 계셨다.

 

오후에는 오전처럼 환자들이 많이 몰리지는 않았다. 좀 더 한가한 진료실 분위기 속에서 나는 메시지를 좀 더 차분히 전할 수 있었다. 진료받는 환자들의 상태에 대해 진료하시는 선생님과 선교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가만히 들으면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돈이 없어서 병원을 못 가고 병원 키워오는 사람들이 꽤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비단 이 곳 방글라데시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이랴! 내 주변을 조금만 더 관심있게 둘러봐도 그런 사람은 비일비재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의인을 찾으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찾으러 오신 것과 잔치에 부자이 아닌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을 초청하신 것을 기억하며 앞으로 기독의사의 윤리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고 삶속에 실천할 수 있도록 공동체를 통해 훈련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위황 선생님

이기라 선생님

조경은 선생님

송락종 선생님

김동익 선생님

 

오후 4시가 조금 안 되었을까? 모든 진료가 끝났다. 비록 내가 환자들을 직접 돌보고 진료를 하고 처방을 한 것은 아니였지만, 밝은 웃음을 띠며 돌아가던 환자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뿌듯함을 느끼고 뒷정리를 했다.

저기 운동장 한 구석에 있는 나무 아래를 보니 우리팀의 학생들이 아이들을 위해 풍선도 불어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있었다. 얼른 달려가서 함께 즐거운 레크레이션을 거들었다. 찬양하고 춤추고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막간을 이용한 이 레크레이션 시간에 동익이형의 감추왔던 끼가 막 터져 나왔다. 즉흥해서 벵갈어로 부르는 찬양과 아이들의 호응을 얻어내는 적절한 센스! 아쉽게도 이제 병원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갈 시간이였다. 아이들은 우리와 함께 했던 그 레크리에이션 시간이 즐거웠는지 학교에서 한참 걸어나가야하는 마을 입구까지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레크리에이션! 신나는 율동 ^^ Let's Dance~!

와이리 이뿌게 웃나?

여러분 안녕~~!!

 

비록 아이들이 우리가 부르는 노래가 무슨 노래이고 서투른 벵갈어 솜씨로 즉석해서 불렀던 찬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를지라도 수년 또는 수십년 후에 언젠가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마을에 와서 사람들을 진료해주고 짧은시간이지만 같이 부대끼면서 뛰어 놀고 춤추고 노래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 했다는 것을 기억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을 한명 한명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당신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실 날이 있으리라는 생각과 함께......

 

오늘은 숙소로 돌아와서 씻고 나서 일지를 쓰다보니 낮잠을 못 잤다. 저녁 모임 때 좀 피곤할 것 같다.

 

저녁 모임. 오늘은 간호사이신 임영순 선교사님과 권영은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임영순 선교사님은 꼬람똘라 기독병원에 부설 기관으로 간호학교를 세울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방글라데시에 기독교인이 0.3%정도 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분류상 기독교인 뿐이지 실제로 예수를 알고 복음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신앙적인 밑바탕이 있는 훈련된 현지인 사역자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하셨다. 방글라데시에서도 영적부흥이 일어나 다른 나라에도 선교사를 파견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랐다.

임영순 선교사님

 

권영은 선교사님은 다른 선교사님들보다 현지에서 사역을 하신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현지의 선교 실태라든가 비전등을 나누기 보다는 자신이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은 과정들을 나눠주셨다. 가장 와 닿은 이야기는 두가지였다. 하나는 내가 방황하고 어려운 가운데 나의 성품을 하나님 쓰시기에 합당하도록 충분히 깎고 다듬으신 후에야 견고함과 확신을 허락하신다는 것이였고, 또 하나는 일부사람들은 단기선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데(단기선교가 말 그대로 단기, 일회용 선교로 끝나기가 쉽다는 생각에서 나온 시각인 듯 하다), 해외로 파송된 선교사의 90%가 단기선교를 통해 헌신을 서원한다는 것이였다. 선교사님의 선교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금 내가 방황하고 힘들어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연단하시기 때문일까...하는 생각과 함께 그 가운데도 이번 단기선교를 통해 나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시려고 하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권영은 선교사님

 

잠자기전 탁구를 한게임 쳤다. 밤에도 선풍기나 에어컨 없으면 푹푹 찌는 동네에서 달밤에 체조라니...

꼬람똘라 병원 게스트 하우스에 나타난 박지성?

 

벌써 내일이면 사역 마지막 날이다. 어제와 오늘, 나는 매 순간 기쁨과 감사, 그리고 신선한 충격의 도가니에 빠져 있었다. 한국에서는 수십년 전쯤에나 겨우 볼 수 있을 만한 현지인들의 생활들, 그 어려움 가운데도 여유와 미소를 잃지 않는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 그들의 삶은 분명 내가 보고 배워야 할 것 투성이이다.

내일 이시간쯤이면 나는 어떤 기쁨과 감사를 맛보고 있을까? 기대된다.

 

 

- 다섯째날에 계속 ^^ Min -